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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은 비가 갠 뒤처럼"은 원작 만화가 있는 애니메이션이다(2018년에 12부작으로 방송). 같은 해에 실사 영화로도 만들어졌다.
우선 결말부터 말하자면, 이 애니메이션은 정말 정말 심심하다. 게다가 나이 차 많은 커플(더 솔직히 말하면 커플조차 아니다. 연애물을 원하는 사람들이라면 보지 마시기를 권한다)의 이야기를 그린다. 거부감이 생긴다고? 노놉! 그런 내용 아니다. 연애물 아니라고 미리 말했잖음? ㅋㅋㅋ
주인공 타치바나 아키라는 17세의 고등학생으로 촉망받는 육상 선수였으나 다리 부상으로 운동을 그만두고 우연히 비를 피해 들어간 레스토랑에서 아르바이트를 시작한다. 그리고 그곳의 점장인 콘도 아사미를(40대에 아들이 있는 이혼남 아저씨. 외모도 우리들이 흔히 생각하는 아저씨 그대로로 그렸음) 좋아하게 된다. 곤도 점장이 비를 피해 혼자 앉아 있는 타치바나에게 마술을 보여 주는 등, 친근한 모습을 보였고, 그것에 호기심을 느낀 타치바나는 운동부를 그만두고 시간도 남아서 아르바이트를 하게 된 것.
냄새가 난다, 능력도 없다는 식으로 다른 직원들에게 무시를 당하지만 타치바나는 그런 곤도 점장을 좋아하게 된다. 사실은 곤도 점장이 손님들을, 직원들을 아끼고 마음이 따뜻한 사람이란 것을 알기에. 계속 곤도 점장을 신경 쓰며 바라보니 남들은 못 보는 모습들을 보게 된 것.
타치바나는 곤도 점장에게 좋아한다고 고백도 하지만, 곤도 점장은 그 의미를 인간적으로 좋아한다는 것으로 이해하고 자신을 싫어하지 않아 다행이라고 한다. 타치바나 1차 고백 실패.
그 후 다시 타치바나는 곤도 점장에게 2차 고백한다. 조용하고 내성적인 것 같은데, 할 땐 하는 타치바나의 용기에 박수를~! 상대가 음, 공감이 안 되어서 그 용기를 진정으로 박수 쳐줄 수는 없지만. 곤도 점장은 타치바나의 고백에 당황해한다. 당연하지. 많은 나이 차와 각자의 상황(고등학생, 애 딸린 이혼남)과 남들이 보면 원조교제한다고 생각할 거라고 하는 등, 타치바나의 고백을 우회적으로 받아주지 않는다. 곤도 점장 착하긴 정말 착하다. -_-;;
이 애니메이션은 위에도 말했지만, 연애물이 아니다. 오히려 성장물이라고 할 수 있다. 꿈을 접고 자기가 사실은 그 꿈을 열망하고 있다는 사실조차 깨닫지 못하는 고등학생과 꿈을 추구하다 현실의 벽에 부딪혀 꿈을 버리고 패밀리 레스토랑 점장으로 하루하루를 살아가는 중년 남성의 성장기를 다룬다고 할까? 어른이라고 해도 꿈이 없을 순 없으니까.
자신의 마음을 적극적으로 표현하는 타치바나를 보며 꿈을 잃은 아저씨 곤도는 다시 꿈을 향해 나아간다. 자신의 젊었을 때 모습을 타치바나를 통해 추억하면서. 아니, 적극적으로 소설을 쓰기 시작했는지 소설가로 성공했는지 어떤지는 모르겠다. 다만, 주기적으로 썼던 소설을 다시 쓰기 시작했다는 것부터가 큰 발전이다. 거기다 이젠 소설가로 유명해진 친구도 다시 만나는 모습에선 자신에게 있던 어떤 자격지심이나 꿈에 대한 미련 등에 대해 후련해하는 것도 보인다. 곤도 점장의 성장은 이 장면만 나온다. 알아서 유추해야지, 뭐. ㅋㅋ
그리고 이 아저씨, 사실은 육상을 계속 하고 싶어하는 타치바나조차도 인지 못한 타치바나의 마음을 꿰뚫고 타치바나가 계속 육상을 할 수 있도록 등을 밀어준다. 사실 타치바나는 재활 치료를 잘만 받으면 충분히 다시 육상을 할 수 있었던 것. 그것을 포기하고 패밀리 레스토랑에서 아르바이트를 했던 것.
나는 원작 만화를 보지 않았지만, 애니메이션에서는 그렇게 곤도 점장이 타치바나가 꿈을 향해 나아가도록 우산을 주는 것으로, 타치바나가 달려가는 것으로 끝이 난다. 이 애니메이션 정말 엄청 서정적이다.
총 10권의 원작 만화를 12부작의 애니메이션으로 끝내려다 보니 내용의 축약은 어쩔 수 없을 듯 한데(원작 만화를 안 봐서 무엇을 어떻게 축약했는지는 모르겠지만), 애니메이션만 본 나는 깔끔하게 잘 끝났다는 생각이 들었다. 좀 많이 심심하고, 은유적인 표현이 많아서 이것저것 곱씹게 되는 애니메이션이기는 하지만, 그런 것을 생각하지 않고 그냥 제목만 보고 혹해서 본 사람들은(제목도 굉장히 서정적이지만 내용은 서정적인 연애물은 아니니까) 아마 중간에 보다가 그만둘지도 모르겠다.
그렇지만 끝까지 보고 만약 한 번만 더 본다면 각자의 심리 등을 꽤 잘 표현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곤도 점장이 타치바나를 여자로서, 사랑의 눈으로 끝까지 보지 않은 점도 좋았고(사실 사랑에 나이차는 무엇이며, 고등학생이라는 것이 걸리지만 시간이라는 것은 지나가는 것이기에 타치바나도 어른이 될 것이니. 단순히 나이차 때문에 사랑을 못한다는 것은 좀 그렇긴 하다. 냉정하게, 상식적인 부분에선. 다만 일반론적인 부분에서는 거부감이 드는 것은 사실이지만), 타치바나의 마음이 진실하지 않았다는 것은 아니지만 다시 자기의 꿈을 향해 곤도 점장이 밀어준 등을 뿌리치지 않고 나아간 것도 보기 좋았다.
이들이 앞으로 어떻게 될지는 모르겠다. 만화의 내용을 찾아보니, 결말은 친구가 되었다는 식으로 표현하던데 그것도 그것 나름으로 괜찮은 것 같다. 모든 남녀의 관계를 "사랑"이라는 감정 하나만으로 묶는 것도 한계가 있는 것 같기도 하고. 언젠가 그런 사람이 있었어, 라는 식으로 회상하는 것도 좋지 않을까? 아니면 어른이 되어서도 곤도 점장을 잊지 못하고 타치바나가 다시 3차 고백을 위해 찾아올 수도 있고.
작화도 좋고, 섬세한 연출, 음향 등 모두 수작이다. 이것을 단순히 40대 아저씨와 고등학생의 사랑 이야기라는 식으로 잘못 오해하고 보지 않는다면 무척 아쉬울 정도다. 분명 심심하고 밋밋한 내용은 맞지만, 그 서정에 흠뻑 빠진다면 꽤 볼 만하다. 특히, 비가 오는 날 곤도 점장이 일하는 레스토랑에 왔던 타치바나가 역시 비가 오는 날 레스토랑을 떠나는 마지막 장면 연결이 좋았다. 타치바나가 달려가고 비가 그치며 하늘에 뜬 무지개를 곤도 점장이 바라보는 마지막 장면은, 이 애니메이션이 궁극적으로 추구하는 내용을 담고 있는 것 같다.
제목을 왜 "사랑은 비가 갠 뒤처럼"이라고 붙였는지도 알 것 같고. 사실 이 작품은 애니메이션으로도 나쁘지 않지만, 인물의 감정선에 나름 공을 들였음에도 자연스럽게 연결되지 않는 부분도 있긴 하다. 아마 원작 만화를 보면 더 짙은 서정과 이들의 심리를 보다 깊게 느낄 수 있지 않을까 싶다.
둘의 사랑이 왜 제목처럼 이루어지지 않느냐,라고 불만을 가진 사람도 있을 것 같다. 나도 처음에 봤을 때는 그랬다. 어쩌다 한 번 더 보고 이 내용의 서사가 다시 보였다. 연애물만을 생각하고 봤던 처음과 마음가짐이 달라지자 안 보이는 것들도 보였던 것.
단순히 남녀 간의 사랑 이야기를 다룬 순정물을 원하지 않는다면, 잔잔하고 서정적인 내용의 남녀 모두 조금이나마 앞을 향해 나아가는 성장물을 원한다면(그게 눈에 보이는 가시적인 성장이 아닐지라도) 꼭 보기를 추천한다.
제목
프리스타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