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지는 yes24에서 발췌
한 때 알랭 드 보통 신드롬이라고 할 정도로 이 사람이 쓴 책은 베스트셀러에 오를 정도로 인기를 끌었다. 지금은 인기가 없다는 것은 아니지만, 예전만큼의 주목도를 갖고 있지 않은 것도 사실이다. 그것은 아마 이 "왜 나는 너를 사랑하는가"와 같은 사랑에 대한 철학적 이야기를 다루는 것 같지만, 일상적이고 평범한 연애 이야기를 새로운 시각으로 보여주는, 참신한 시도의 글이 이후로는 없기 때문인 것도 같다. 그렇다고 알랭 드 보통의 책이 별로라는 이야기는 절대 아니며, 이후의 글들이 참신하지 않다는 것도 아니지만 소설보다는 여행기나 에세이 같은 글이 더 많아서일 수 있기에.
"왜 나는 너를 사랑하는가"는 2002년 처음 출간되었으며, 철학자인 알랭 드 보통이 처음으로 낸 소설책이기도 했다. 정말 첫 소설일까? 싶은 정도의 내용을 담백하고 재미있게 풀어낸 것을 보면, 글 쓰는 사람은 역시 따로 있다는 생각이 든다.
나는 제목에 끌렸다. 사랑하는 것에 대한 이유를 논리적으로 풀어 썼다는 당시 누군가의 추천인지, 서점의 평인지, 지금은 기억 안 나지만 저 제목이 유난히 끌려서 책을 읽기 시작했고, 내용에 빨려 들어갔다.
사실, 내용은 별 거 없다.
"파리에서 런던으로 가는 비행기 안의 짧은 만남에서 "클로이"와 만난 "나"는 둘이 옆좌석에 앉게 된 상황을 수학적으로 풀어내며 5840.82분의 1의 확률로 그럴 수 있었다고, 상상하기 힘든 확률로 만나게 되었다며 클로이에게 빠진다. 그렇게 둘은 서로에게 맞추고 노력하며, 서로를 이해하려 하는 등, 누구나 하는 그런 사랑을, 연애를 한다.
그러나 마치 운명적으로 만날 수밖에 없었다는 그런 만남을 가진 둘이지만 클로이가 "나"의 친구와 바람이 나서 "나"는 클로이에게 버림 받는다.-물론 책에는 바람이라느니 하는 말은 없지만, 일상적으로 생각하면 바람이지, 다른 말이 필요할까? 아, 배신이라고 할 수 있을까?- "나"는 운명적 사랑이라 생각한 클로이에게 받은 상처를 "자살"이라는 극단적인 방법으로 그 둘에게 갚아주려 하지만, 결국 그것은 실패로 끝나고, 클로이 없이 못 살 것 같던 그 공허나 빈 느낌도 결국에는 익숙해지며, 후에는 또 다른 사랑에 빠진다."
내용만 생각할 때는 여느 연애소설과 다름 없다. 아니 여느 연애소설보다 더 재미없을 것 같다. 이 책에는 상당히 많은 철학자의 말이 인용되어 사랑을, 연애를, 이별을 철학적으로 풀어내는 부분이 많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내용이 딱딱하다거나 재미없다거나 하지 않는, 겉보기와 달리 무척 재미있고 독특한 책이다. 오히려 이런 철학자들의 말을 인용함으로써 책 자체에 독특함과 매력, 유머러스함이 더해졌다.
나는 이 책을 읽고 사랑이라는 게 정말 운명일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클로이가 마음에 들었기 때문에 상상하기 힘든, 그 5840.82분의 1이란 식의 확률까지 계산하여 우리는 "운명"적으로 만난 것이라고 "포장"을 하게 된 것은 아니었을까? "운명"이라면 헤어져서도 안 되고, 그것도 누군가의 배신으로 헤어지면 안 되는 것 같기 때문이다. 클로이는 정말 나쁜 년이다. 그런데 클로이를 잊을 수 없을 것 같은 "나"도 다른 사람을 만나 사랑하게 된다.
결국 이 둘의 만남은 "운명"이 있다면, "운명"도 아니고 "완성형 사랑"도 아니었던 것. 물론 사랑 그 자체를 "완성형 사랑"으로 구분을 짓는다는 것도 말이 안 되기는 한다. 클로이는 정말 나쁜 년이었을지 모르지만 "나"에 대한 사랑이 식었고, 하필이면 "나"의 친구를 사랑하게 되어서 더 욕을 먹는 캐릭터이지, 클로이 입장에서는(처음 읽었을 때는 그냥 나쁜 년이었다. 그런데 나이가 든 후 다시 읽었을 때는 조금 생각이 변했다. 머 그래도 나쁜 년인 것은 맞다고 생각하지만) 운명이라 생각했지만, 운명이 아니었고 다른 남자에게 운명을 느꼈는데 그게 하필이면 친구였다,고 항변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여기서 문제는 사람이 사람과 만나거나 결혼하거나 혹은 헤어질 때라도 최소한 믿음과 신뢰는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아무리 "운명"적 사랑이라고 해도 서로 노력하지 않는 사랑이 과연 있을 수 있을까? "운명"이기에 노력하지 않아도 되는 사랑이 정말 있을 수 있을까? 그래서 클로이가 나쁜 년이라고 생각한다. 사랑에도 예의라는 것은 있으니까. 그리고 그런 클로이이기에 아닐 수도 있지만, "나"의 친구를 버리고 또 다시 다른 사람에게 갈 확률도 꽤 높지 않을까?
사랑을 환상이라고 말하는 경우도 있는데, 이 책을 읽으면 정말 그런 것 같다. 그런데 그럼에도 사랑이 환상이고, 상상이라고 할 지라도, 지독하게 실연 당한 "나"가 또 다른 사랑을 하는 것으로 소설이 끝나는 것을 보면, 그런 사랑일지라도 우리는 사랑을 하며 살아야 한다고 말해주는 것 같다.
책의 내용 중 공감가는 부분이 꽤 있었는데, 그 중 몇 문단만 적어보겠다.
"사랑이란 무엇일까? 나 자신이 사랑을 한다고 믿고 있다면 그것은 내가 특정한 문화적 시기, 어디에서나 감상적인 마음을 찾아내 숭배하는 문화적 시기에 살고 있기 때문이 아닐까? 사랑의 동기가 된 요인은 내가 아니라 바로 사회가 아니었을까? 다른 문화와 시대에서라면 내가 그녀에 대해 느끼는 감정을 무시하라고 가르치지 않았을까."
"사랑에 빠지는 일이 이렇게 빨리 일어나는 것은 아마 사랑하고 싶은 마음이 사랑하는 사람에 선행하기 때문일 것이다. 요구가 해결책을 발명한 것이다. 사랑하는 사람의 출현은 누군가를 사랑하고 싶은 [대개는 무의식적인] 요구, 사람의 출현에 선행하는 요구의 제 2 단계에 불과하다. 사랑에 대한 우리의 갈망이 사랑하는 사람의 특징을 빚어내며, 우리의 욕망이 그 사람을 중심으로 구체화 된다"
특히 두 번째 문단이 마음에 와 닿았다. 누군가를 사랑하고 싶어서, 사랑을 하게 되는 것. 콩깍지가 눈에 씐다고 하는데, 바로 그럴 때가 사랑의 환상에 취해 있을 때가 아닐까? 평생 그 환상이 깨지지 않는다면 좋지만, 깨지더라도 그 환상은 다시 올 수 있다.
가을, 특히 외로움을 많이 타는 시기라는 이 계절에, 외로움을 느낀다거나, 누군가를 향한 마음이 생겼다거나, 누군가와 헤어졌다거나, 너무나 행복하다거나 한 사람들 모두 한 번쯤 읽어보면 좋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