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음 영화 정보에서 이미지 발췌
올해는 많은 영화를 극장에서 보자는 결심은 아니지만 생각을 했었다(그 정도 문화 여유는 부리며 살자라고 해야 할까? 영화 못 볼 정도로 엄청나게 바쁜 것도 아니면서 삶의 여유가 없었던 지난 날들... 새삼 후회가 되었다. 더 나이 들고 늙기 전에...). 여러 결심 아닌 생각들 중 그나마 생각대로 하고 있는 게 영화 많이 보자인 듯...(최소 한 달에 2편은 보자고 말이다. 누구에겐 적겠지만 나로서는 그나마 최소인 선택일 정도로 생각한대로 움직이기 힘들었었다)
1월부터 3월 초인 지금까지 8편의 영화를 봤으니 내가 생각 이상으로 많이 봤다고 할 수 있어, 괜히 뿌듯했다(이런 식으로 다른 생각들도 생각한대로 할 수 있다면 올해 말이 되었을 때 뿌듯한 한 해로 마무리할 수 있지 않을까?). 내가 본 8편 중 가장 작품성이 뛰어나다고 생각한 것이 바로 "스포트라이트"였다. 왜 스포트라이트가 아카데미 작품상을 받았는지, 아니 당연히 받았어야지,라면서 수긍이 가는 영화다.
이 영화의 배경은 2001년이다. 실제 있었던 사건을 구성한 것으로, 영화 보는 내내 영화에 깊이 몰입하여 보았다. 그 정도로 구성과 연출력이 뛰어났다. 범인을 잡기 위한 수사물과 같은 범죄 스릴러가 아닌데도 불구하고(꼭 그런 영화만이 긴장감을 주며 몰입도를 높이는 것은 아니지만!) 영화 상영 시간 내내 긴장을 늦추지 않고 흠뻑 빠져서 볼 수 있는 영화가 몇이나 될까? 쉽지 않다. 그러나 스포트라이트는 그랬다.
은폐되어 있는 가톨릭 신부들의 성범죄 사건들을 들추는 과정이니 범죄를 밝혀내는 스릴러물이라고 볼 수도 있지만, 영화의 긴장감은 우리가 흔히 스릴러 영화를 보면서 느낄 수 있는 그런 긴장감과는 그 질적인 부분이 다르다. 게다가 스포트라이트가 스릴러라고 보기에는 약간 무리한 부분이 있는 듯.
미국의 3대 일간지 중 하나인 보스턴 글로브지 내에는 "스포트라이트"라는 팀이 있다. 이 팀은 집중적으로 파헤쳐야 하는 사건을 다룬다. "스포트라이트"라는 뜻 역시 무대나 영화 등의 연출 기법으로 한 곳만 집중적으로 보여줄 때 쓰는 조명기를 의미한다. 이 의미는 넓은 의미로 흔히 집중적인 시선을 받는다거나 하는 뜻으로 쓰이는데 바로 이 영화의 제목이 그걸 의미한다.
이 스포트라이트 팀에게 새로 온 신임 편집장은 30여 년에 걸쳐 아동을 성추행한 혐의로 기소된 지역 교구 가톨릭 신부에 대해 심층적인 취재를 하라고 지시한다. 스포트라이트 팀은 처음에는 그것에 대해 난색을 표하는 듯 싶지만 결국 별 편집장의 말에 별 저항 없이 취재를 시작한다. (여기서 좀 놀랐다. 엄청난 반발을 할 것이라 생각했는데, 편집장의 말은 곧 법인 것인지 팀의 기자들이 생각보다는 종교적이지 않은 것인지... ㅋㅋ)
큰 기대 없이(?) 시작한 가톨릭 신부에 대한 취재는 하면 할수록 그 성추행 사건이 빙산의 일각이었다는 것을 스포트라이트 팀원들은 알게 된다. 이 팀이 2001년에 취재를 시작하여 가톨릭 신부들의 추한 면(아동들을 성추행, 성범죄로까지 이어지는 것을 가톨릭 교구에서 쉬쉬했던 것)을 낱낱이 파헤치는 과정에서 9.11 테러 사건이 터져서 6주 정도 중단되는 기간이 생긴다. 그 기간 동안 생존자들(신부들에게 성추행을 당했던 아동들이 그 기억을 지우지 못해 자살하거나 잘못되지 않고 살아남은 사람들) 중, 가장 적극적으로 이 일에 대해 알리고자 했던 사람은 "또 이렇게 덮으려는 거냐"며 화를 낸다. 스포트라이트 팀이 이 사건을 파헤치기 몇 년 전에도 제보를 했으나 받아들여지지 않았던 기억이 있던 것.
다시 본연의 사건으로 돌아온 팀원들은 계속 사건을 파헤쳐 보스턴 교구 내에만 90여 명의 신부들이 그런 일을 저질렀다는 사실을 알아내고 명단까지 만든다(영화를 봤는데도 이게 9.11 전인지 후인지 헷갈리지만 중요한 것은 그게 아니니...). 그 각각의 신부들 및 그들에게 피해를 당한 사람들을 찾아내고 취재하여 드디어 2002년 1월에 이 사건을 보도한다.
이렇게만 보면 내용 뻔하네?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 그런데 앞에서도 밝혔듯이 영화의 몰입감이 정말 최고다. 스포트라이트 팀 내 4명의 기자들이 각각 맡은 바 임무를 충실히 하면서 신부들의 추한 면을 알아내고 그것에 대한 마음을 드러내는 등의 그 과정들이 군더더기 없이 물 흐르듯이 자연스럽게 표현된다. 왜 작품상과 각본상을 같이 받았는지 영화를 보면 알 것이다. 특히 이들이 신부들을 파헤치는 것을 알고 은근한 협박을 하는 것 등을 보여주고, 그것에 굴하지 않고 기자로서, 언론으로서의 의무와 권리를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파헤치는 모습이 정말 좋았다.
나도 모르게 속에서 올라오는 그 뭉클함. 특히 마지막이 좋았는데, 당연히 이런 뉴스를 보도했을 경우의 그 후폭풍을 기자들은 예견했으나 오히려 피해자들의 전화 폭주가 이어진 것. 그리고 영화 말미에 전세계 곳곳에서 벌어진 신부들의 이런 행태에 대한 리스트가 쭉 올라가는데 입이 쩍 벌어졌다. 빠르게 올라가는 그 리스트 속에서 우리나라를 찾으려 한 나. 있었다면 벌써 보도가 되었겠지만, 없어서 안심이 되면서 한편으로는 밝혀지지 않은 것은 아닌지 괜한 걱정까지 한...
종교는 성역이라고 표현한다. 그래서 종교인과 관련한 범죄를 다루려고 할 때, 늘 그 종교의 수장이나 권력의 장과 트러블이 일어난다. 대다수의 영화나 드라마를 보면 그렇다. 이 영화에서도 마찬가지. 가톨릭 교회는 기 교구 신부들의 그런 추한 면을 알고 있으면서도 무조건 덮으려고 피해자들과 은밀히 만나 보상을 하여 형사처벌로까지 가지 않도록 만들었다. 또한 그런 기록 또한 법원이 아닌 자신들이 갖고 있었을 정도로 권력의 최상위를 잡고 있었다. 그런 교회에 스포트라이트 팀이 도전을 한 것.
그러나 영화에서는 교회에서 어떤 방해 공작을 했는지 안 했는지 모르겠지만 그런 부분은 일체 보여주지 않는다. 그저 기자들의 취재 과정, 언론이 어떻게 하고 있는지, 나아가서 어떻게 해야 하는지만을 중점적으로 보여준다. 실상은 가톨릭 교회의 추악한 면, 교회 시스템의 잘못된 부분을 고발하는 형태의 소재를 차용하고 있지만, 그것을 다루는 언론의 모습이 오히려 중요한 것. 거기에 포커스를 맞춘 것이 영화에 몰입감을 높여 주고 나아가 좋은 영화를 만들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실제 이 보스턴 글로즈지 내의 스포트라이트 팀은 2003년에 이들이 쓴 가톨릭 교구 사건을 취재한 기사로 퓰리처상을 받았다. 이들의 기사를 통해 미국 전역, 나아가 전세계 전역으로 퍼진 효과는 이루 말할 수 없는 것. 그렇기에 영화 말미에 그런 리스트가 올라갈 수 있었을 것이고 말이다.
특히 이들의 시선이 좋았다. '특종'이라는 이루 말할 수 없는 가벼운 말로 이 사건을 다루지 않았다. 진지하게 추악한 부분에 치를 떨면서 미래를 위해 진실을 밝혀낸 것이다. 그랬기에 영화를 보는 내내 감동 받았는지도 모르겠다.
그래서 언론이 중요한 것이다. 도전하기 힘든 성역에 도전한 스포트라이트 팀이 있었기에 우리는 밝혀야져야 하는 진실을 알 수 있었다. 밝혀져서 생길 상처보다 밝혀졌기에 회복될 상처가 더 중요하고 크기에, 이런 일들은 언론이 밝혀야 했고 또 늦었지만 빨랐다. 자정 작용을 할 수 없다면 외부에 의해서라도 곪은 곳을 파서 새 살을 생기게 해야 한다. 자신들의 권위 때문에 무조건 쉬쉬하며 덮다 보면 나중에는 더 큰 상처로 되돌아온다.
우리의 지금 언론은 어떨까. 그 언론을 바라보는 우리의 시선은 어떨까. 영화 내부자들 속의 언론이 바로 우리가 생각하는 모습이라고 봐도 되지 않을까? 실제 그렇다는 게 아니고 지금 우리가 바라보는 그 시선의 의미가 그렇다는 것. 어떻게 생각하면 굉장히 안타까운 일이다. 우리는 믿어야 하는 모든 부분, 언론이나 검찰과 경찰 등을 믿지 못하고 있다. 그런 시선이 대다수다.
이 영화 속 스포트라이트 팀처럼 자신이 해야 할 일을 제대로 할 때, 비로소 세상이 제대로 돌아가는 것이다. 이들의 기사로 비틀어졌던 어떤 세상이 바로잡는 계기가 되었던 것처럼.
우리에게도 스포트라이트 팀과 같은 믿음직한 언론이 있었으면 좋겠다. 사회적 파장을 몰고올지 언정, 그것이 긍정적인 효과를 줄 수 있는 그런 것. 당장은 아프더라도 새 살이 돋아나 더욱 튼튼한 체계가 될 수 있는 것.
정말 좋은 영화다. 꼭꼭 보길...
마이클 키튼이 많이 늙었구나... 하는 생각에 짠한 마음이...
제목
스포트라이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