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라딘에서 이미지 발췌
이사카 고타로의 책은 가벼운 듯하지만 막상 읽은 후에 남는 여운이 꽤 강하다. 희한하게 "골든 슬럼버" 같은 블록버스터 영화를 보는 듯한 내용의 책보다 "집오리와 들오리의 코인로커", "종말의 바보"와 같은 무언가 여운이 짙게 남는 책이 좋다. 물론 이사카 고타로의 작품이 모두 그렇듯이 "골든 슬럼버"가 "집오리와 들오리의 코인로커"와 같은 결이 아니란 것은 아니다. 그의 책은 모두 사회에 어떤 메시지를 던지는 것 같다. 개인적인 생각이지만 "골든 슬럼버"도 분명 한 개인이 사회에 의해 갑자기 쫓기는 신세가 되면서 벌어지는 이야기로, 마냥 가볍지 않은 소설이나 다른 작품에 비해 자꾸 가볍게 느껴진다. 그래서일까? 다른 책들에 비해 여운이 짙게 남지 않았다.
이사카 고타로의 책 중 "사신 치바"를 가장 좋아하는데, 너무 진지하지도, 너무 어렵지도, 너무 가볍지도 않기 때문이다. 솔직히 "집오리와 들오리의 코인로커"는 어려웠다. 왜인지 모르겠지만.
이사카 고타로의 책은 모두 좋아해서 특별히 더 좋아하는 "사신 치바" 외에는 우위를 논할 수가 없다. 굳이 논할 필요가 없기도 하고. 단지, "사신 치바" 외에 묵직하게 다가오는 책이 몇몇 있는데, 그중의 하나가 "중력 삐에로"다. "종말의 바보"도 참신한 소재로 다 읽은 후 나에게 다양한 생각거리를 주었다.
"중력 삐에로"는 무겁다. 내가 느낀 책의 무게감은 그랬다. 주인공 하루는 잘생기고, 그림도 잘 그리고, 딱 주인공다운 사람이다. 미신을 잘 믿고, 가끔 엉뚱한 행동을 하여 철벽 완벽남 같지 않아 더 매력 있는 그가 유일하게 성에 관련된 것은 혐오한다.
하루는 일본어로 "봄"이라고 하나보다. 이중적인 의미를 지니고 있는 주인공 하루와 그를 끔찍하게 아끼고 사랑하는 형과 아버지가 중심으로 이야기가 흘러간다. 형 이즈미는 유전자 관련 회사에서 일하는데, 이들의 형제애가 정말 부러울 정도다. 형이 하루를 사랑하는만큼 하루 역시 형에 대한 마음이 각별하다.
겉으로 보면 너무나 애정이 넘치는 이들 가족(어머니가 일찍 돌아가셨지만)에게 그늘은 없는 것 같다. 아버지가 암 투병 중이나 그것 때문에 가족 사이가 깨질 정도로 그들의 애정은 얇지 않다.
연쇄 방화사건이 생기고, 그림을 잘 그리고 그래피티를 하는 하루와 형 이즈미가 방화 사건을 쫓으면서 이야기의 흐름이 본격적으로 시작된다. 추리소설 같기도 하고 가족 소설 같기도 하고, 하루의 성장 소설 같기도 하다. 그 모든 장르를 너무나 잘 만들어서 마지막의 매무새까지 완벽하다. 이 책을 읽다보면 시간 순삭이 일어난다. 손을 놓을 수 없게 만드는 흡입력 있는 내용과 그것에 빠져 허우적거리다 문득 시계를 보면 밝았던 방이 어둠의 그늘에 잠겨 있다. 페이지가 많은데다 책을 빨리 읽지 못하는 나이기에 유독 시간이 더 걸렸을 수도 있지만.
잘생기고 매력적인 하루에게 여자들이 끊임없이 귀찮게 한다. 하루는 여자에게 관심이 없고, 아니 성적인 그 어떤 것을 모두 혐오하는데도 말이다. 남자를 좋아하냐고? 이런 일차원적인 질문을 넘어선 하루의 출생 비밀이 있다. 그것은 집에 있는 엄마가 몰래 숨어들어온 강간범에게 강간을 당하고 낳은 아들이 바로 하루라는 사실이다.
엄마가 임신을 한 사실을 알았을 때, 지울 수도 있었으나 아버지는 낳으라고, 아내를 다독인다. 글쎄, 아이, 생명이라는 자체는 중요할 수 있지만, 그 과정이 원치 않던 일이었는데 그 아이를 지우려고 하지 않은 엄마와 그 아이를 낳자고 하는 아버지. 대단한 사람들임에는 틀림없다. 쉽지 않은 결정과 그런 내용을 너무나 담담하게 표현한 작가.
그런 과정으로 생긴 아들이나 아버지는 하루를 잘 키운다. 형 이즈미와 편견 없이, 사랑스럽게. 게다가 하루가 자기의 출생의 비밀을 비밀이 아니게 밝힌 것도 대단한 듯하다. 사랑받고 잘 큰 하루이기에 그늘이 없는 것 같지만, 그가 "성과 관련된 그 어떤 일들 모두"를 혐오하는 것을 보면 자신의 출생에 대해 깊은 슬픔 혹은 괴로움을 갖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책의 마지막을 보면 더욱 하루가 사실은 자신에게 DNA를 남긴 그 강간범을 증오하고 있었다는 것도 말이다.
이 책은 방화 사건의 범인이 누구지?라는 생각을 하며 읽다가 중반 이후부터는 가족의 의미에 대해 생각하게 된다. 단순히 핏줄이라는 그 DNA가 가족을 만들어주는 게 아님에도 아직까지 그 핏줄에 대한 집착이나 고집은 일명 막장만 봐도 빈번하게 나오는 소재다. 이 책은 그런 부분조차 그게 뭐 어때서?라고 과감하게 흘려버린다. 다른 것도 아닌 "강간범 때문에 생긴 아이"라는 꽤나 파격적이고 극단적인 내용을 다루면서도 말이다. 어쩌면 이렇게 극단적인 내용을 "그게 뭐 어때서?"라는 식으로 흘려버리는 게 더 효과적일 수도 있겠다.
"범죄자의 자식은 범죄자"라는 이상한 고정관념과 편견이 만연하는 세상, 보이지 않거나 대놓고 드러내는 연좌제의 그 낡은 프레임도 "중력 삐에로"는 깡그리 부수어버린다. 유전자가 중요하냐, 자라는 환경이 중요하냐의 문제는 아직까지도 결말이 나오지 않은 문제이기도 하지만, 그 막장 드라마에서 끊임없이, 지긋지긋하게 나오는 핏줄과 관련된 내용은 결국 전자에 우위를 두는 거 아닐까 싶기도 하다.
나는 중력삐에로를 읽고 가족에 대해 많은 생각을 하게 됐다. 하루와 아버지, 형 이즈미의 그 관계가 오래도록 이어지고(아버지가 오래 사시기를~), 하루가 자신의 출생의 그늘을 벗어나기를 바랐다.
재미있다. 그리고 무척 묵직하다. 결말은 모호하지만 산뜻하다. 엥?하는 생각이 들 수도 있지만, 다시 생각해보면 이게 최선의 방법이었을 것 같다. 그래야 하루가 살아갈 수 있을 테니까.
이 책 정말 강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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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리스타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