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라딘에서 이미지 발췌
지금은 살 수 없는 품절이다.
오랜만에 원수연의 "풀하우스"를 다시 봤다. 책장 상단에 꽂혀 있어서 매일 내 눈길을 받지만, 한 번 읽고 다시 읽지 않는 책이 된지 오래였다. 이 책을 살 때는(오래 전이구먼) 다음 권이 언제쯤 나오나, 설레고 기대감에 매번 기뻤었다. 사면서 벌써 다음 권이 언제 나올까를 기대할만큼, 내 어린 시절에 이 책은 크나큰 재미이자 즐거움이었다.
그랬었는데, 어느 순간부터 의무감으로 책을 사게 되었다. 그 기점이 언제였는지 모르겠다. 처음 보자마자 어린 나를 사로잡았던 그 어른들의 사랑 이야기가 점점 짜증나게 변해갔을 때였는지, 점점 이야기가 재미없어졌을 때였는지 기억나지 않지만, 늘 다음 권이 나오면 1권부터 다시 보던 일이 없어졌다.
아마 이 책 때문에 내가 어떤 플랫폼의 작품을 보더라도 3각, 4각으로 쓸데없이(내 생각으론) 관계를 꼬여서 갈등 유발하는 것에 진심 짜증을 내기 시작했던 것 같다. 아예 그런 내용이라면 안 본다,는 생각이 깊숙하게 자리잡게 된 계기였던 듯싶다. 정말이지 아주 그런 내용은 지긋지긋하다,는 생각이 가장 먼저 든다.
예쁜 그림체에(남녀 모두 어찌나 예쁜지, 어린 마음에 주인공 라이더에 설레고, 엘리가 라이더랑 행복했으면 했고. 뭐 그런 생각을 열심히 했었다) 엄청난 인기의 배우와 작가 지망생(작가였나, 작가 지망생이었나. 헷갈린다)과의 사랑 이야기라니! 소녀소녀한 감성이 한창일 때의 어린 나에게는 완전히 가슴 두근거리고 새로운 내용이었다.
처음엔 그랬다!! 점점 내용이 서로의 갈등과 오해가 계속 반복되며 굳이 없어도 될 것 같은데 왜 자꾸 갈등을 만들고 오해를 만드는지 권수가 늘어갈수록 보는 내내 화가 났었다. 아마 그래서였는지, 해피엔딩 완결이 났는데도 단 한 번만 보고 다시 보지 않은 책이 되었다. 16권까지 끌 내용이 아니었다고!!!
그러다 잊고 살던 풀하우스 2부가 나왔다! 2005년에! 그리고 2009년에 5권으로 완전히 완결이 났다. 1부가 아주 지긋지긋해서 그랬을까? 2부가 나왔다는 소식을 들었지만, 무시하고 그냥 잊고 살았다. 그렇게도 좋아했던 작품이었는데 말이다.
언젠가 문득 생각나서 2부의 내용을 찾아봤는데(세상에 웹검색을 그렇게 했는데 2부에 대해 언급한 글들이 거의 없었다. 그나마 있는 글들도 1권과 2권까지 보고 실망이다,라는 것들이었고. 그나마 완결까지 본 분의 글을 통해 해피엔딩이라서 다행이란 생각이 들었다), 결혼 1주년이 된 라이머와 엘리에게 또 오해와 갈등이 시작되고, 엘리는 교통사고로 기억상실에 걸리고(진심이뉘?!!) 엘리를 돌봐준 뭔 황태자는 엘리에게 반해서 청혼을 하고. 이봐, 이봐. 그 사람은 유부녀라고!! 이런 내용이 4권까지 이어지다가 5권이 되어서야 엘리가 풀하우스로 가지만, 기억을 찾았음에도 엘리는 그것을 밝히지 못하다 밝혔는데도 라이더는 멀리 영화 촬영하러 가고. 몇 개 안 되는 풀하우스 2부에 대한 내용을 살펴보면 대략 이런 듯하다.
세상에 마지막권까지 저 모양이라뉘!! 아마 중반부 되어서야 다시 서로의 진심을 깨닫고 어쩌고 하면서 해피엔딩으로 끝이 나겠지. 나, 풀하우스 2부를 보지 않았음에도 결말이 예상이 된다. 후덜덜덜. 뭐 10년 훨씬 전에 나온 내용이라고 쳐도 교통사고와 기억상실이라니, 와~! 저런 식으로밖에 내용을 쓸 수 없었는지 2부 안 본 스스로가 너무나 대견할 정도다. (하긴 아직도 막장 드라마 보면 기억상실이니 출생의 비밀을 너무나 쉽게 사용하는 것을 보면... 그래도 원수연 작가는 그런 식으로 쓰면 안 되잖아!!)
행복하게 잘 살았습니다, 그 후의 이야기를 쓰고 싶었다고 풀하우스 2부 책 소개에 써 있는 글을 보았다. 아니, 결혼이 물론 끝은 아니지만 저런 식의 결혼이라면 결혼 전과 달라진 게 없잖아? 물론 난 안 봤다. 보지 않았으니 비판이란 것을 한다는 것에 양심이 찔리긴 한다. 차라리 결혼 후에 임신이나 육아 같은, 연애와는 다른 결혼이라는 테두리 안에서의 갈등을 부각시켜 그렸다면 더 나았을 것 같다. 2부가 나와서 1부가 된 16권의 내용과 달라진 게 도대체 뭐냐고~!
암튼 그런 애증의 풀하우스를 다시 보았다. 어린이가 어른들의 세계를 동경하듯 보았던 그때와 지금의 내가 바라보는 시점은 다를 것 같았기에, 크게 심호흡을 하고 1권부터 보았다. (그렇게 아끼면서 보았는데도 오래되어서 그런가 책의 겉면이 점점 낡아지는 모습에 마음이 아파졌더랬다)
그림체는 지금 보아도 여전히 좋았다. 지금의 10대나 20대가 볼 땐 어떨지 모르겠다. 나는 어쩌면 원수연, 한승원, 이은혜 작가의 그림체에 이미 익숙해지고 길들여져서 좋을지도. 그래도 좋은 걸 어쩌냐고. ㅋㅋ
내용은, 음. 그래, 그랬지. 다시 보니 정말 작품성은 별로라는 생각이 들었다. 스토리에 조금 더 신경을 썼다면 그림체가 이렇게 좋으니 진짜 훌륭한 작품이 되지 않았을까, 하는 안타까움. 진짜 아쉬웠다. 다시 보니 어렸을 적에 이 작품을 보며 가슴 설렜던 기억도 생각나고 열받았던 것도 생각나고. ㅋㅋ 16권을 보는 동안 기분 좋게 보기 보다, 짜증을 더 많이 냈으니... 푸휴. 남녀의 사랑을 이런 식으로밖에 그릴 수 없다면, 그건 정말 엄청 안타까운 일이다.
거의 이십 년이 넘어서 본 것 같은데, 이번이 마지막으로 보게 된 게 아닐까 싶다. ㄷㄷㄷㄷㄷ
이 작품을 보는 김에 한승원의 단편집들을 다시 보았는데, 지금 봐도 여전히 감동적이었다. 늘 생각하지만 좋은 내용은 세월이 흘러도, 오랜 시간이 지나도 촌스럽지 않고, 감동을 준다. 이런, 이런 느낌을 주면 좋았을 텐데. ㅜㅜ 아아, 내 애증의 "풀하우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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