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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라딘에서 이미지 발췌
오랜만에 책장 구석에서 잠 자고 있던(정말 잠 자고 있었다. 책장 구석, 이단으로 쌓여진 책들 안 쪽에 꽂혀 있던) 이 책을 꺼내들었다. 이 책을 보고 싶어 꺼낸 건 아니었고(그렇기엔 앞에 쌓여 있는 책들을 다 꺼내야 하는... 귀찮은 일이...) 대청소를 하던 참에 책장의 책들 먼지도 걷어내는 작업을 하다, 안 쪽 구석, '금니는 싫어요'를 발견!
아, 맞다. 이 책 어렸을 적에 정말 좋아했는데, 하면서 하던 청소도 멈추고 책들을 살펴보았다. 책을 보는데, 책의 내용 보다 이 책을 볼 때의 내 어린 시절, 그 시절의 상황들이 생각나면서 새삼 나에게도 어린 시절이 있었구나,라는 자각(?)까지 하며 멍하니 책을 펼쳤다. 워낙 오래된 책이라 조심조심하면서 펼쳤지만, 겉모습이 조금 낡은 것에 비해선 책 속이 너무 깨끗해 깜짝 놀랐다.
내가 사 놓고는 한 번도 안 읽었나? 그도 그럴 것이 어렸을 적 내 유일한 즐거움은 바로 소녀 만화 잡지 '나나'를 읽는 것이었는데, 거기서 연재했던 만화가 바로 이 이은혜 작가의 '금니는 싫어요'였다. 창간호부터 폐간까지 줄기차게 모았던 만화 잡지라, 좋아하는 만화는 읽고 읽고 또 읽었다.
폐간까지 모았었나? 이건 기억이 가물가물하다. 내 즐거움은 고등학교를 들어간 이후 거의 없어지다시피 했기에... 언제 폐간이 되었는지도 모르겠다. 검색해보니 92년도에 창간해서 97년도 쯤에 폐간. 허억!! 역시 그럼 나는 나나와 창간은 함께 했어도 폐간까지는 함께 못했... ㅠ_ㅜ 암흑의 고딩.
흐음, 이상하다. 초딩이나, 중딩, 고딩 때의 기억 모두 한 장면씩 몇 개의 단편으로만 기억되고 있지만 내가 그렇게 열심히 공부를 했던 것도 아니었는데, 왜 폐간을 함께 못한 거지?! 중 3 때부터 그 전과 달리 만화와 사이가 멀어지긴 했지만... 그렇게 좋아했던 만화를 뚝 끊었다는 사실이 어이가 없네. 그 이유가 기억이 안 나!!!
아! 기억 났다. 20대의 언젠가 갑자기 생각난 '금니는 싫어요'의 결말이 궁금해 단행본을 사서 마지막만 챙겨 보았던 일이... 실화냐! 이제 생각나니?! 그것도 품절이라 중고로 샀다는 사실까지 기억 남. -_-; 중고인데도 책이 그렇게 깨끗했어? 잘 샀는데? 쿨럭;; 고로 지금은 정말 더욱 구하기 힘들다는 사실!! 이건 e-book으로라도 볼 수 없어서 만화카페를 가거나 중고로 열심히 검색해서 볼 수밖에 방법이 없다.
새삼 내 기억력의 무서움을 느끼고, 이제 본론으로 들어가서!
청소하다 말고 쭈욱 다시 본 '금니는 싫어요'는 어렸을 적, 그렇게 줄기차게 읽고 또 읽었던 감성이 그대로 담겨 있었다. 대가족 속에서 사춘기 중학생 진노랑과 얽힌 가족들, 짝사랑 상대 등, 주변 인물들과의 관계가 너무나 재미있다. 가족 이야기지만 주된 이야기는 사랑이다. 이은혜의 다른 만화들처럼 마냥 어두운 사랑 이야기에서도 가족이 중심이 되어 그려지는 것처럼 이 만화 역시 그렇다.
다만, 대가족 모두의 사랑 이야기를 그리다 보니 각 캐릭터의 사랑 이야기들이 단편적으로만 그려지는데, 그런 부분이 아쉽지만 오히려 그렇기에 더 깔끔하게 내용이 이어지는 것 같아서 그것도 나름 괜찮았다. 어렸을 적에는 뭣도 모르고 그냥 좋아했었는데 다시 보니 인물들의 이야기가 정말 너무 짧다 싶은 생각이 들어 아쉬웠다.
로맨티스트 멋쟁이 할머니, 여전히 사이 좋은 치과 의사 아빠와 만화가 엄마, 큰 오빠 진보라(패션업계에 종사하는 어른의 이미지라 어렸을 적에 진짜 좋아했던 것 같다. 지금 이 나이에 봐도 멋지더라. ㅋㅋㅋ. 같이 일하는 독신주의 민정과 결국 사랑을 이룬다), 둘째 오빠 진초록(공부만 하는 샌님 대학생. 같은 대학생인 혜지와 결국 커플이 되는데, 어렸을 적에는 좋아하지 않았던 커플이었는데 다시 보니 혜지가 아깝...ㅋㅋ) 셋째 진남(언니로는 첫째. 대학생으로 정도 많고 똑똑하지만 표현력이 차가운 타입이랄까? 이런 진남을 10년 넘게 좋아한 도현이의 짝사랑이 슬펐었다. 다시 봐도 역시 도현 좋아! ㅋㅋㅋ), 주인공 진노랑(사춘기 중학생으로 큰오빠의 일을 우연히 돕다가 알게 된 프랑스 모델 피터를 좋아하게 된다. 짝사랑은 정말 잔인하다. 피터는 파비앙이라는 연인이 있어서 어렸을 때, 피터와 노랑이가 이어질 바라면서 파비앙이 무척 싫었더랬다. 허구헌날 노랑이와 싸운 학교 친구 천국표가 노랑이를 좋아하는 것도 싫었다. 나는 오로지 노랑이와 피터를 응원했;; ㅋㅋ 아마 20대 때 중고 서적으로라도 구해서 결말을 본 게 이 둘이 어떻게 되었는지 궁금해서였던 것 같다. 그걸 보고 난 후 어땠는지는 또 기억이 안 나. ㅋㅋㅋ 이 나이가 되어 다시 본 감상은... 피터는 그냥 노랑이의 짝사랑 상대, 그 이상도 아니었겠구나,라는 것과 천국표가 진국이었네, 라는 것. ㅋㅋㅋㅋ), 초등학생 남동생 진주홍(너무나 순수한 주홍이는 좋아하는 강희에게 받은 볼 뽀뽀를 잊지 않으려고 안 씻기까지 한다. ㅋㅋㅋ 강희 캐릭터가 별로였지만, 지금 보니 그저 귀엽게만 보이는...), 막내 진분홍(유치원생 답지 않은 조숙한 면이 있는 분홍이조차 콜롬보라는 남자 친구가 있다!!)의 이야기까지, 온 가족의 모든 사랑이야기가 나온다. 헥헥헥.
세상에 유치원 막내와 20대 후반의 큰 오빠(어라? 30대던가?). 나이 차가 후덜덜덜~ 엄마와 아빠의 사랑 이야기도 너무 예쁘다.
노랑이와 국표. ㅋㅋㅋㅋㅋㅋ
이러니 4권 분량의 책이 짧다 느껴지지. 거기다 할머니와 천국표의 할아버지 로맨스까지!! 물론 그냥 친구로 남게 되었지만. 역시 이 부분도 다시 보니 왜 이렇게 아쉬운지 모르겠다. 어렸을 적에 볼 때와 나이가 엄청 든 후에 볼 때의 느낌이 너무 달라~~
어렸을 적에 이 만화를 보면서 정말 오빠,라는 존재를 가지고 싶었다. 난 왜 오빠가 없냐!! ㅋㅋㅋ 뭐 지금도 가끔 오빠가 있다면 좋을 텐데,라는 생각을 하긴 하지만. ㅎㅎ 그런데 난 그렇게 어렸을 때에도 어른스러운 사람을 좋아했구나. ㅋㅋㅋㅋㅋㅋ 보라, 도현, 피터. ㅋㅋㅋㅋㅋㅋㅋ
이 만화, 모든 캐릭터들이 멋지고 사랑스러운 만화다. 이 많은 캐릭터들이 모두 겹치는 성격 없이 캐릭터 역할 배분을 잘 했다. 각기 다 다른 상황의 사랑 이야기들을 이 가족들에게 모아 놓은 듯한 느낌이다. 한 번씩은 해보고 싶은 사랑 모음 같은 느낌? ㅋㅋㅋ 다시 봐도 여전히 이들의 대화와 상황, 감수성이 그대로 흡수된다. 약간의 촌스러움은 있을 수 있겠지만, 사랑스럽다. 이 가족 모두가. 이 만화는 무척 유쾌하고, 따뜻하며 이 가족들이 너무 부러운 느낌마저 든다.
다만, 커서 보니... 큰 오빠 진보라와 결혼할, 그것도 독신주의자였던 최민정이 조금 힘들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런 대가족의 맏며느리라니!! 아, 난 왜 이런 만화를 보면서 저렇게 말도 안 되는 현실적인 생각을 하는 것이야?! ㅜㅜ 만화를 보면서 현실을 생각하다니, 이건 만화 광팬으로서 있을 수 없는 일!! ㅋㅋㅋㅋ
이은혜 만화 중에 이 '금니는 싫어요'보다 늦게 봤지만 흠뻑 빠진 만화가 있었다. 'jump tree A+'라는 만화! 어린 시절 고등학생에 대한 환상과 꿈, 뭔가 간질간질한 무엇인가를 꿈꾸게 하던 만화였다. 그러나 마지막에 배신 당하고(승주 파!!), 이 작가의 만화 중 가장 애정하는 만화는 '금니는 싫어요'로 바뀌었다. 그만큼 애정도가 쑥 빠졌다는 말. '금니는 싫어요'를 싫어하는 것도 아니고 재미있게 보면서도, A+ 만큼의 가슴 두근거림은 느끼지 못했었다. 그런데 이렇게 다시 보니(이 말을 도대체 몇 번 하는 거야? ㅋㅋㅋ) 진짜로 잘 만든 작품이었다. 가끔 생각날 때마다 펼쳐봐야겠어~ ㅎㅎ 이래서 좋은 책(각자 자기 주관에 따르겠지만)은 소장하고 있어야 한다. 두고두고 보고 싶고, 또 생각나는 책이 좋은 작품이랄까? 또한 책을 펼치면서 느껴지는 그 감정은 E-book으로 보는 것과는 그 결이 확연히 다르다. 물론, 구할 수 없는 만화는 E-book으로 소장하는 것으로도 감지덕지지만.
제목
프리스타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