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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척 아련한 로맨스 영화다. 일반적인 로맨스 영화와 달리 달달함 보다는 사랑이 식어가는 안타까움, 사랑이라는 이름의 불편한 진실, 잃어버린 사랑에 대한 아픔, 그럼에도 "너"라는 운명적인 사랑법 등을 잔잔하게 보여준다.
2005년에 개봉했으니 오버해서 거의 15여 년 전의 영화다. 그럼에도 소재가 지금도 흔하지 않고, 촌스럽지 않으며 주제는 여전히 유효하다. 2015년에 재개봉을 했는데, 전국 관객 39만 명을 넘어섰다고 하니 시간이 흘렀어도 좋은 영화는 사람들의 사랑을 받는다는 것을 다시 한 번 보여줬다고 할까?
역대 최고의 멜로 영화라는 말까지 듣는 "이터널 선샤인"에서 로맨스는 사실 주가 아니다. 사랑을 잃은 이후의 이야기가 대부분을 차지한다. 그렇다고 지루하고 우울하기만 하냐? 그건 아니다. 뭐 영화의 전체적인 색깔이 밝은 것은 아니지만. 그럼 고난과 위기와 갈등을 겪었어도 "너는 내 운명"과 같은 스토리일까? 결론부터 말하자면 해피엔딩이다. 그렇다고 무조건적인 "너는 내 운명"과 같은 스타일은 아니다.
이 영화는 로맨스 영화임에도 꽤나 현실적인 로맨스를 그린다(왠지 로맨스 영화는 판타지 요소가 늘 깔려 있는 것 같다). 사랑을 잃게 되는 과정, 사랑을 잃은 이후의 감정, 그럼에도 그 또는 그녀를 다시 사랑하고 싶은데, 그럴 수 있을까?로 시작되는 고민 등이 자극적이지 않게 그려진다. 그렇다고 이 영화에 "판타지" 부분이 없느냐 하면 그렇지 않다. 사랑 자체가 판타지 아닐까?
순응적이고 내성적인 남자 주인공 조엘(짐 캐리)은 늘 하던 일상에서 벗어나 충동적인 기차 여행을 떠났고, 그곳에서 여자 주인공 클레멘타인(케이트 윈슬렛)을 우연히 만나 사랑에 빠진다. 활달하며 외향적인 클레멘타인은 조엘과는 반대의 성격으로, 이런 성격이 둘을 운명이라 생각하게 만들었으나, 결국 그 때문에 잦은 싸움을 반복하며 둘은 점점 멀어진다. 운명, 영원할 것 같은 그들의 사랑은 결국 영원하지 못했다.
여느 때처럼 싸운 후, 조엘은 클레멘타인에게 찾아갔으나 클레멘타인은 조엘을 기억하지 못한다. 나중에 알고보니 라쿠나사라는 기억을 지워주는 회사에서 클레멘타인이 조엘과의 모든 기억을 지워버렸기 때문이었다. 조엘은 배신당한 기분에 괴로워하다 자신도 라쿠나사에 찾아가 클레멘타인을 지우기로 한다.
재미있었던 것은 기억을 지우는 것이 그냥 뇌에 무엇을 삽입한다든가 머리에 무엇을 연결하여 삭제한다는 점이 아니라 조엘의 집에서 직접 라쿠나사의 기술자들이 기억을 지운다는 것이다. 기계가 아닌 인간의 손에 의해 진행된다는 점이 인간적인 느낌?(2005년도 영화라 그때는 못 느꼈지만 시간이 흐른 지금 보니 그 장면이 더욱 좋았다는 아이러니...) 뭐 기계를 이용해서 지우는 게 맞긴 한데... -_-; 뭐라고 설명해야 할까?
조엘의 기억 삭제는 최근의 기억부터 진행되는데 점점 과거로 진행될수록 조엘은 자신이 지금 하는 기억 삭제를 후회한다. 클레멘타인과의 기억들이 모두 나쁜 것은 아니었기에. 조엘은 기억 삭제를 피하기 위해 어린 시절로 돌아가기도 하고, 숨기도 하고, 기억 속의 클레멘타인과 함께 도망치기도 한다.
이런 조엘의 저항 때문에 기술자들은(마크 러팔로-스탠 역, 커스틴 던스트-메리 역) 총 책임자인 하워드 박사를 부른다. (이 과정 중에 메리가 하워드 박사에게 자신의 마음을 고백하는데-스탠과 연인 사이인데도- 거기에 반전이 숨어 있었다. 그것은 메리와 하워드는 과거에 불륜을 했었고, 메리는 그 사실이 괴로워 자신의 기억을 지웠었던 것. 그럼에도 다시 하워드를 사랑하게 된 메리였다. 연인을 두고서도. 아니 유부남이기에 잊기 위한 방편이었는지. 아무튼. 메리와 하워드는 그래서 어떻게 될까? 영화에서 확인~)
각설하고, 기억 삭제를 거부하고 계속 도망치던 조엘은 결국 자신이 클레멘타인에게 했던 잘못을 인정하고 모든 기억을 지운다. 여기서 끝? 설마아~ 클레멘타인에 대한 기억이 없는 조엘은 또 다시 본능적으로 클레멘타인과 처음 만났던 기차를 타고, 도착한 그곳에서 클레멘타인을 다시 만난다.
왠지 저렇게 끝나면 낭만적일 것 같지만, 이 영화는 그런 낭만을 깬다. 자신의 과거를 알게된 메리가 그 사실에 충격을 받고는 라쿠나사에서 기억을 지운 모든 사람들에게 그들의 파일을 보낸다(처음에는 이해되지 않았던 그녀의 행동이, 나중에는 이해가 되더라). 클레멘타인과 조엘 역시 그 파일을 받았고, 서로에게 했던 험담들(기억 삭제의 과정 중 하나였다!)을 고스란히 듣게 된다. 적나라하다!!
조엘과 같이 이를 들은 클레멘타인은 혼란스러운 마음에 조엘을 떠나려 하는데, 조엘이 그녀를 붙잡고 "OKAY"라고 한다. 예전에 영화를 봤을 때는 "이 무슨 뜬금없는 말이지?"라고 생각했더랬다. 상대방이 자신에게 한, 자신이 상대방에게 한 그 모든 험담을 듣고 나온 말이 "OKAY"라니, 이 무슨 뚱딴지 같담. 그럼에도 둘이 다시 시작하는 것 같아서, 그걸로 좋았다. 열린 결말 같았으나 해피엔딩이라 생각했으므로. 그리고 "이 영화 독특하면서도 나쁘지 않다"라고 생각했었다.
그러다 10여 년이 훌쩍 지나고 다시 본 이터널 선샤인은 처음보다 더 큰 재미를 주었다. 저 말의 의미도 이해할 정도로 좀 더 깊이 있는 시선으로 볼 수 있었다. 서로의 단점, 불만 등을 다 들은 후 내뱉은 그 말은 모두 수용한다는 것, 아니 받아들이고 인정한다는 것 아닐까? 사랑은 그 사람의 단점까지 모두 받아들여야 가능한 것이니까.
그래서 "헤어진 커플은 다시 시작해도 헤어지기 쉽다는 말"이, 이 두 사람 조엘과 클레멘타인에게는 해당이 안 될 것 같다. 서로의 사랑이 상처가 되어, 그 상처가 힘들어 기억까지 지웠는데도 다시 만났고 사랑하게 된 두 사람, 그 둘을 그런 관계로 만든 서로의 차이까지 받아들이는 사랑을 다시 시작한다면 그 어떤 사랑보다 굳건하지 않을까?
조엘 시점으로 영화가 진행되기에 더욱 조엘의 감정에 몰입하며 보아서, 싸운 후 기억을 지워버린 클레멘타인을 처음에는 이해할수 없었다. 그러나 조엘의 시점으로 조엘의 기억 삭제를 통해 드러난 그 둘의 모습을 보니 왜 조엘의 시점으로 영화가 진행되는지 알 것 같았다. 그리고 클레멘타인의 마음도. 그런 부분까지 클레멘타인이라는 사람을 드러내는 장치이기도 했을 테고. 좋은 영화는 한 번만 보면 안 된다. 두 번 봐야 해~ 아니 세 번 봐야 해~ ㅋㅋ
단순히 이 영화가 "너와 난 운명이기에 다시 만날 수밖에 없어"와 같은, 로맨스 영화의 정석적인 해피엔딩으로 끝났다면 그냥 그저 그런 로맨스 영화의 하나가 되었을지도 모르겠다. 이런 것을 깨고, 운명일지라도 그것을 지속시키는 마음까지 완전히 보여준 결말이 이 영화의 가장 큰 핵심적인 부분인 것 같다. 왠지 이 둘은 살면서 계속 싸워도 똑같은 실수는 저지르지 않을 듯하다. 그래서 정말 가장 꽉 닫힌 결말의 해피엔딩인 것 같아 더욱 좋았다. 게다가 기억을 지웠어도 다시 만나는 판타지가 동반된 사랑이라면 헤어지는 게 더 어렵지 않을까?
안 본 분들이 있다면 꼭 보셨으면 좋겠다. 내용이 마냥 쉽지는 않다. 조엘이 기억을 지우는 과정을 통해 나오는 장면들이 복잡하게 느껴질 수도 있다. 장면 연출 자체도 평이하지 않아서 로맨스 영화라고 쉽게 보려했다가는 낭패를 볼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꼭 봐야 할 영화라고 생각한다. 장면들을 곱씹어 보는 맛이 있다. 특히, 배우들의 연기가 너무 좋다. 이 영화를 통해 짐 캐리에게 가졌던 기존 이미지를 모두 버렸다. 이렇게 연기를 잘 하는 배우였구나. ㅎㅎ 물론 '트루먼 쇼'에서의 연기도 좋았지만, 이 영화 속의 짐 캐리는 짐 캐리가 아니면 안 되는 연기를 보여주었다. 고정적으로 갖고 있는, 웃기는 캐릭터를 가진 배우가 진지한 연기를 통해 연기 변신을 한다는 게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잘 알기에 더욱 놀라울 따름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연기만 잘 하면 고정관념의 기존 이미지는 충분히 버릴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 짐 캐리였다. (아~ 젊은 세대들은 짐 캐리를 모를 수도... 알아도 코미디 배우였던 것을 모를 수도 있겠구나. ㅋㅋㅋ)
사랑이라는 판타지가 깨지고 현실이 보인다면, 그 현실 속의 상대방까지도 사랑할 수 있는 사람이 되어야 "사랑"이라는 말을 할 수 있을 것 같다. 고난과 위기를 겪지 않아도 "사랑"은 그것만으로도 이미 충족된 것이니까. 사랑하는 사람들은 자신의 사랑을 소중히 하시길~ ㅋㅋ
제목
프리스타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