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음 영화 정보에서 이미지 발췌
2017년에 개봉한 영화 '아이 캔 스피크'는 결론부터 말하면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관련 내용이다. 2014년, CJ 문화재단에서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시나리오 기획안 공모전에 당선된 작품이 영화로 제작된 것.
당시 개봉 때는 보지 못했던 이 영화를 TV에서 보면서, '만약 올해 3월에 개봉되었다면 어땠을까', 잠깐 생각했었다. 올해는 대한민국 임시정부 수립 100주년이면서 1919년에 있었던 삼일 운동(항일) 100주년이기도 하기에, 이런 때 발맞춰 개봉을 했다면 조금 더 많은 관객들이 영화를 보지 않았을까? 아쉬움이 남는다.
그만큼 영화 완성도나 울림이 크다. 개봉 당시에 보지 못했던 내가 이런 말을 한다는 게 웃기지만.
동네의 민원이란 민원은 모조리 넣는 듯한, 동사무소에 무려 8천 건에 달할 정도로 많은 민원을 넣어서 동사무소 공무원들이 학을 떼는 '옥분'(나문희 분))과 그 동사무소의 원칙주의 9급 공무원 '민재'(이제훈 분)의 불통에서 소통으로 나아가는 이야기 속에, 그 배경으로 일제강점기 때의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라는 아픈 우리 역사가 깔려 있다. (게다가 실화를 바탕으로 한다. 일본군 '위안부'라는 그 사실도 그렇지만, 영화의 말미에 옥분이 이루어내는 것도 실제 있었던 일이다.)
아니, 정확히 말하자면, 이 영화의 궁극적인 이야기는 '위안부' 피해자의, 그분들의 말이다. 그렇지만 그것을 직접적으로 드러내지 않는다. 그렇기에 이 영화가 시종 무겁거나 음울하지 않다.
시장 수선실에서 옷 수선을 하며 살고 있는 옥분이 동사무소에 민원을 넣는 것만큼이나 열심히 하는 일이 있다. 그것은 바로 영어다. 열심히 하지만 도통 늘지 않기에 고민이다. 그런 옥분이 보았다! 원어민처럼 영어를 너무나 잘 하는 동사무소의 그 청년 민재를! 그 후부터 옥분은 민재에게 영어를 가르쳐 달라고 매달린다.
그러나 민재는 그런 옥분을 무시할 뿐이다. 이런 민재와 옥분을 잇는 다리 역을 하는 인물이 있는데, 바로 민재의 동생 영재(성유빈 분)다. 이런저런 과정을 거치며 민재는 옥분에게 영어를 가르쳐주기 시작하나 처음부터 진심을 다하지는 않는다. 그러나 명절 때 외로운 민재네와 옥분네. 옥분이 해주는 명절 음식을 먹으며 보다 가까워진다.
그리고 민재는 알게 된다. 옥분이 그렇게 열심히 영어를 배우고자 하는 이유를. 이것은 미 의회 청문회에서 일본의 만행, 일본군 '위안부'의 실상을 밝히기 위해서였다. 그러니까 옥분은 우리의 아픈 역사를 고스란히 당하고, 그것을 가슴에 묻은 채 살고 있었던 것이다. 옥분은 이 사실을 누구에게도 말하지 못했던 그 사실을 미 의회 청문회에서 당당히 밝힌다. 그것도 영어로. 진짜 감동적이었다. 그 장면을 보는 내는 먹먹하고 뭉클해져서 울다가, 저 역사가 그리 오래되지 않았다는 사실을 깨닫고 다시 경악했다.
이 장면은 영화의 하이라이트라고 할 수 있는데, 바로 실제 있었던 일이다. 2007년에 미 하원 의회 '위안부' 사죄 결의안(HR121)이 통과되었는데(2007년 6월 26일 일본군 '위안부' 사죄 결의안(HR121)이 채택), 이것은 2007년 2월 15일에 미국 하원 의회 공개 청문회를 통해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였던 이용수, 김군자 할머니가 증언 덕이다. 미국 하원 의원들이 이 증언으로 결의안 결정을 굳혔다고 한다.
게다가 영화에도 나오는, 동양인이 아닌 서양인인 네덜란드 출신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잰 러프 오헤른 할머니(영화에서는 미첼이라는 이름으로 극화했다)를 통해 일본이 '위안부'라는 이름으로 만든 피해자들이 단지 한국 및 아시아의 문제가 아니었음을 알 수 있다. 그 피해자가 소수라고 해도 일본의 만행에 다시 한 번 소름이 돋는다. 영화에 서양인이 등장해서 놀랐는데, 영화를 통해 위와 같은 사실을 알았다. 내 얇은 지식에 한심함을 더했다.
이런 영화(일본군 '위안부' 피해자를 다루는 영화들을 꺼려하는 심리는 뭘까?)를 생각할 때, 흔히 연상되는 것들을 이 영화에서는 찾아볼 수 없다. 물론 어느 정도의 신파는 있지만, 생각보다 덤덤하게 그려서 더 감동적이었다. 특히, 미 의회 청문회에서 자신의 아픈 과거(옥분뿐만 아니라 그 시대의 아픈 과거)를 밝히고 친자매처럼 지냈던 사람들의 시선을 의식하는 옥분의 모습에 가슴이 아팠다. 현실적인 설정이라 더 와닿았다. 물론, 가장 친하게 지냈던 진주댁(염혜란)은 옥분의 아픈 과거를 알게 되어서가 아니라 옥분이 그 아픈 일을 지금까지 말하지 않았던 사실에 속상해서 옥분에게 냉랭하게 대했던 것. 그것은 분명 아픈 일이지만 숨기고 창피해할 일이 아닌 것인데 말이다. 옥분은 아픈 역사를 이야기함으로써 그 일에서 조금은 자유로워 보였다.
옥분뿐만 아니라 민재 역시 옥분 덕분에 성장한다. 그렇게 원하던 일은 아니었지만, 그냥 그렇게 현실에 순응해서 살려던 민재가 옥분의 도전을 보고 자신도 하고픈 일에 도전을 하게 된다.
영화, 정말 괜찮다. 신파조의 영화나 가벼움 속에 살짝 양념처럼 끼얹는 신파, 모두 싫어하는데 이 영화는 잘 만들었다. 옥분이 아픈 역사의 한 부분이었다는 사실이 영화의 반전이라면 반전일 수 있지만, 그런 것을 알고 봐도 충분히 재미있다. 반전이 중요한 영화는 아니기에.
못 보신 분들은 꼭 보셨으면 좋겠다. 이 영화는 가해자를 대놓고 비판하는 내용이 아니다. 오로지 그때 있었던 일을 덤덤히 보여줄 뿐이다(그게 영화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것도 아니다). 그것을 통해 무엇을 느낄지는 각각의 개인이겠지만 같은 전범국인 독일과 일본의 너무나 다른 태도는 생각해볼만 하다. (오죽하면 할머니들이 미 의회까지 가서 그런 증언을 했을까. 오죽하면...)
정말 궁금하다. 손으로 하늘을 가리고 그렇게 살고 싶은지. 자신들이 저지른 일이, 그 역사가 가린다고 가려지는 것인지!(아! 자국민들의 역사 교육을 통해서는 가능했던가?) 후세의 사람들이 지금도 계속되는(100년이 넘도록, 강제로 빼앗았을 때와 그것을 거짓이라 자신들마저 속이는 그 행태들) 일본의 태도를 과연 어떻게 볼 것인지, 정말 궁금하다. 독일의 반만큼, 아니 제대로 된 사과와 인정, 역사 교육을 했다면 지금까지 이어지는 이런 감정들이 이토록 뿌리 깊게 박히지는 않았을 것이다.
영화를 보며 다시 한 번 느꼈는데, 언어를 배운다는 것은 뚜렷한 목적 의식, 동기가 있어야 꾸준히 잘 할 수 있는 것 같다. 나에게 부족한 것은 바로 그것!
제목
프리스타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