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음 영화 검색에서 발췌
간만에 욕을 한 바가지 하고 싶은 영화를 보았다.
사실, 내용은 살펴보지 않고, 세종대왕의 한글 창제 내용이라고만 알고 영화를 본 게 나의 커다란 실수였다. 뭐, 그래도 보았으니 욕을 할 수 있을 터!!
보고 난 후, 영화의 평들을 살펴보니 좋은 점수를 준 사람들이 쓴 "영화는 영화로서 봐라. 창작물이다.", "세종대왕을 신격화하는 건 가능하고, 아닌 것은 역사왜곡이냐.", "역사왜곡인지 모르겠다", "신미가 만들었다는 게 훨씬 타당하다.", "세종대왕의 인간적인 면과 위대한 업적을 모두 드러냈다. 세종대왕 폄하 영화가 아니다." 등등의 말들이 있었다.
그래, 영화는 영화일뿐이라고 하지만 그것을 보고 "세종대왕의 고뇌를 알 수 있었다느니", "신미 스님에 대해 알아봐야겠다느니", "한글 창제의 어려움을 제대로 느낄 수 있었다느니"라고 한다면, 이런 생각이나 감상이 생길 때, 이것이 단순히 영화적인 것에서 끝날까? 예술 작품이 우리에게 영향을 미친다,는 당연하고도 보편적인 감성을 잊고 단순히 "영화는 영화일뿐"이라면서 역사 왜곡이 있는 영화를 예술의 창의적인 관점에서 본다고 한다는 것은 굉장히 무책임한 소리다. 이는 단순히 옹호하고자 하는 궤변이다.
예술 작품은 후대에도 영향을 끼치기에 그 안에 있는 도덕이나 패악적인 것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고, 표현에도 고민을 하게 된다. 단순히 표현의 자유라는 것으로 자신이 만드는 예술 작품에 고민 없이 흥미 위주나 왜곡적인 것들로 치장한다면, 그 작품은 좋은 작품이 되지 못한다. 물론 예술 작품이 당시에는 논란이 되었으나 후대에 좋은 작품이라고 재평가 받는 경우는 있다. 그것은 당시의 사회적인 분위기(예를 들어 보봐리 부인이나 제인 오스틴의 작품들)에 기반하여 성적인 부분이나 여성의 권리 등을 반대하기에 논란이 되는 것이지, 작품 그 자체가 우수하지 못하거나 작품에 작가의 예술적인 부분이나 고뇌가 없는 것이 아니기에 가능한 것이다.
"표현의 자유"라면서 쉽게 만들어서 나온 작품들은 후세가 되어도 다시 재평가 받기는 어려울 것이라 생각한다. 왜냐하면 그것을 받아들이는 사람들도 결국 인간이라는 존재들이기 때문이다. 보편적인 힘이나 인간적인 사회 모습 등을 믿는, 지극히 보통의 사람들이기에 단순히 표현의 자유라는 이름으로 패악적이거나 혐오스런 내용을 만든다면 그것을 받아들이는 것은 굉장히 쉽지 않다. 그것은 단지 작가의 삐뚤어진 모습을 표현한 것일 뿐. 아, 물론 소수에서는 그런 것을 예술이라 일컬을 수 있다. 꼭 대중적인 사랑을 받아야만 예술작품이라는 것은 아니니까.
그렇다. 그렇기에 더욱 대중적인 예술 작품을 만들 때는 나 혼자만의 만족에 빠진 작품을 만들면 안 된다. 사람들에게 영향을 끼칠 수 있다는 것을 아는 사람이라면, 혹은 그것을 알기에 이용하려는 것이 아니라면 더욱 고민이 동반되어야 한다. 꼭 대중 예술을 통해 감동을 주어야 한다거나 교훈을 주어야 한다는 말이 아니다. 적어도 사람들이 무엇을 비판할지에 대해서 예측할 수 있어야 한다는 말이다. 자기가 만드는 대중 예술 작품을 그런 생각 없이 만든다는 것은 감독으로서 실격이라 본다. 그 비판을 예측한다면, 그것을 받아들이고 나름의 논리와 가치관으로 반박을 할 수 있다면 괜찮다.
그러나 그렇지 못한 상황이라면 그 작품이 대중 예술 작품으로서 과연 좋은 작품일까? 이 작품이 욕을 먹는 것 중의 하나는 역사를 다루면서 그것을 감독 자신의 상상으로 만들었다는 것이다. 그것도 세종대왕의 한글창제라는, 역사적 사실이 꽤나 많이 드러나 있어서 상상으로 만들 수 있는 부분은 창제에 대한 부분과 관련 학자들, 세종의 고뇌 등일 텐데, 그런 부분을 포함하여 세종대왕의 한글 창제 자체에 대한 사실까지 건드렸다는 점이다.
한글 창제에 세종의 자식들(수양 대군, 안평 대군 등)이 함께 했다는 것, 불교 경전에 쓰인 범어를 알기 위해 신미 스님까지 불러 한글 창제에 도움을 받았다는 사실까지도 받아들일 수 있다. 이것은 신미 스님이라는 분이 실제 실록에 있기도 하니(억불숭유 정책인 조선 초기에) 상상력으로 엮어서 충분히 만들 수 있다. 다만, 그 상상력이 역사를 넘어서 왜곡 논란까지 벌어진다는 것이 문제다.
영화를 보면, 세종대왕은 한글 창제에 큰 역을 하지 않는다. 그래, 백성을 위해 고뇌하고 보다 좋은 글자를 만드려고 하나, 그것을 실질적으로 하는 것은 세종대왕이 아니다. 좀 더 심하게 말하자면 세종대왕은 단순히 신미 스님이 만든 글자들을 최종적으로 합격, 불합격 처리하는, 의뢰한 사람에 지나지 않는다. 그렇게 비쳐진다. 새로운 것을 만드는 실무자는 신미 스님이고, 세종대왕은 그저 새로운 것의 좋고 나쁨을 평가하고 쓸 것인지 말 것인지 결정하는 결정권자로만 보인다. 물론 의견을 보탠다. 딱 그 정도까지다. 거기에 실무자가 아닌 결정권자가 백성을 위해 좋은 글자를 만들어야 한다고 고뇌한다고 할 때, 그 결정권자의 마음이 와 닿을까?
여기서부터 벌써 불편하다. 사실 신미 스님이 왕이 불렀는데, 반말하거나 인사조차 안 하는 부분에서부터 왜곡은 시작했다. 그럼에도 그런 부분은 귀엽게 넘길 수 있다. 신미 스님이란 사람의 성격을 그런 식으로 보여주고 싶다면, 그래. 그건 창조적인, 감독의 재량이라고 본다 치자.
그런데 한글을 만드는 그 고뇌와 고민을 짊어진 것은 세종대왕이 아니고 신미 스님이다. 하다못해 같이 한글을 만드는 것에 협력하던 대군들도 아니다. 이것은 세종대왕의 한글 창제가 아니고 신미 스님의 한글 창제다. 세종대왕은 백성을 위해 새로운 글자를 빨리 만들어야 한다며 고뇌하고, 그 자신의 몸 상태, 위정자들의 협박 아닌 압박 등을 견디지만 한글을 실질적으로 만드는 것은 세종대왕이 아닌 신미 스님이기에 거기서 괴리감이 든다. 반면에 신미 스님은 오로지 글자 만드는 것에만 모든 신경이 꽂혀 있다. 백성에 대한 마음이나 한글 창제에 대한 그 어떤 커다란 고민 등은 보이지 않는다. 그래도 영화 속에서 한글을 누가 만들었냐고 묻는다면 세종대왕이 아니고 신미 스님이라고 부를 수 있을만큼, 그가 개발자이자 실무자다.
어찌 불편하지 않을 수가 있을까? 만약 감독이 정설이 아닌 야설(신미 스님이 한글을 만들었다는)을 소재로 영화를 만들고자 했다면, 영화 말미나 앞에 분명히 밝혔어야 한다. "이것은 영화적 상상력으로 만들었다"라고. 그런 것 없이 단순히 "영화는 영화다"라는 말로 영화에 그 어떤 문구도 없이 비판을 비껴가고자 한다는 것은 감독 자신이 갖고 있는 신념이나 가치관이 왜곡되었다고 보여질 수밖에 없다.
앞에서도 계속 말했듯이, 역사를 다룬 드라마나 영화를 사람들이 더욱 민감하게 받아들이는 것은 그것을 진실로 받아들이는 사람들이 분명 있기 때문이다. 더구나 기록이 많지 않은 삼국 시대나 고려 시대가 아닌, 엄연히 실록이라는 세계 기록 문화 유산을 통해 당시의 많은 일들이 기록되어 있는 시대의 이야기를 다루면서 세종대왕을 마치 한글창제의 보조자로 만든 것을 단순히 스토리가 좋고, 영상이 좋다는 식으로 칭찬을 하고 넘어갈 수 있을까?
이것은 한글 창제를 세종이 하지 않았다는, 어떻게 보면 역사 왜곡을 넘어 우리의 역사를 반하는 엄청난 내용을 다룬 것이기도 한 것이다. 신미 스님이라는 인물을 한글 창제를 도운 인물로 드러내고 싶었다면, 그를 주인공으로 했으면 안 된다. 물론 한글 창제에 여러 학자들(신미 스님을 비롯하여 대군들이나 등등의 인물들. 확실하진 않으나...)이 개입해서 도왔을 것이다. 어찌 세종대왕이 혼자 만들었겠는가. 그가 아무리 뛰어난 언어학자라고 해도. 그것은 이해한다. 그러나 그중에서 신미 스님을 중요 인물로 부각시키고 싶었다면, 앞에서도 말했듯, 영화 앞이나 뒤에 문구 하나만 썼으면 됐을 일이다.
그렇다면 찜찜하더라도, 역사 왜곡이 좀 있는 듯하더라도, 감독의 재량이라고 어느 정도 수긍할 수도 있었다. 그리고 실록에 있는 한글 28자를 세종이 만들었다는 문구 역시, 세종이 그 만든 사람들 중 대표적인 인물이니 그렇게 썼을 수 있다. 그렇다 하더라도 세종이 정말 과연 한글 창제에 단순히 보조적인 입장이었을까? 그 뛰어난 언어학자가? 본인이 중심이 되어 한글 창제를 이끌어가지 않고? (영화 속에서는 신미 스님이 다 만든다)
여기서 궁금해진다. 도대체 감독은 이 영화를 통해서 무엇을 말하고 싶었는지 말이다. 그가 불교 신자여서 신미 스님을 중심으로 만든 것인지, 당시 가장 낮은 직책의 사람이 왕과 함께 한글을 만들었을 수도 있다는 것을 드러내서 권력이 허상이라는 것을 보여주고 싶은 것인지. 만약 후자라면 하필이면 왜 세종대왕을 건드렸을까? 여러 비판들도 있긴 하나, 그가 성군이라거나 그가 이룬 여러 업적을 통해 우리나라 역사 인물 중 가장 존경하는 사람 1위로 꼽히는 것을 이해하지 못할 사람이 없을 정도의 인물인데, 그것도 그의 업적 중 최고로 치는 한글 창제를 건드리다니. 무엇을 말하고 싶은 걸까, 감독은?
국어를 전공한 사람들뿐만 아니라 한글에 관심 있어서 검색만 하면 알 테지만, 한글 창제에 천지인 사상이란 것이 있다. 이것은 한글은 단지 소리 문자일뿐 아니라 상형 문자이기도 하다는 것을 말해주는 것이다. 쉽게 말해 한글에서 모음은 하늘과 땅, 인간을 본 떠서 만들었다는 의미를 가진 것으로 이에 대한 부분은 영화에 전혀 나와 있지 않다. 혀의 위치에 따른 후설이니 전설이니 등을 떠나서 한글의 기본 글자 자음은 발음 기관의 모양을 본떠서 만들었다. 이것은 한글 창제에 대한 가장 기본적인 부분이다. 기초다. 그런데 영화에서는 이 모음에 대한 것을 신미 스님이 우연히 천장의 서까래를 보고 만든다. 그러니 왜곡이라고 떠들 수밖에.
게다가 한글을 창제하는 과정도 너무 허접하게 그렸다. 도대체 영화 어디에서 한글을 만드는 과정이 너무 어렵고 복잡해서 감동할 수 있었는지 이해가 안 되었다. 차라리 드라마 "뿌리 깊은 나무"가 한글 창제의 어려움을 제대로 표현했다.
한글 창제, 그 자체가 아니라 세종대왕, 신미 스님, 소헌왕후라는 인물들의 관계, 그들의 단편적인 행동들에 영화의 중심이 모아져서 솔직히 한글 창제 그 자체가 돋보이지도 않는다. 세종대왕의 소헌왕후에 대한 사랑이나 소헌왕후가 한글 창제에 기여했다는 부분 역시도 불편했다. 이것은 대군들이 한글 창제에 기여했을 거라는 이야기보다 더 신빙성이 떨어진다. 점점 영화 초반 애교로 보아넘기던 것들이 모두 왜곡으로만 보였다. 하나의 큰 틀이 왜곡되니 다른 모든 것들 역시 영화적 상상력으로 볼 수가 없던 것.
그리고 또 하나 불편한 것. 불교에 대한 부분이다. 난 집안이 불교를 믿는다. 어렸을 적부터 엄마 따라 일요일마다 억지로 어린이 불교학교에 다녔을 정도로, 부모님 모두 불심이 대단하시다. 친척들 역시 마찬가지기에, 자연스럽게 불교라는 문화에 익숙하고 불교 행사들에도 친근하다. 오히려 기독교적인 시각은 불편하다.
그런 내가 이 영화 속의 불교적인 시각은 너무 불편해서 참을 수가 없을 정도였다. 불교는 아니지만, 친불교적인 성향의 같이 본 친구가 먼저 "이 감독 불교 안티야?"라고 말할 정도. 정말 불교인들이 이 영화를 불편함 없이 본다면, 각자의 시각은 다르구나, 라고 넘어가겠지만 그럼에도 난 불편했다. (세상에, 검색해보니 동국대에서 단체로 영화 보러 간다니...) 그리고 감독이 불교 안티가 아니고, 불교를 너무 광신도적으로 믿어서 잘못된 방법으로, 오히려 거부감이 느껴지게 만든 것 같은 생각이 들었다.
영화의 말미, 불교에서 지내는 천도제. 소헌왕후의 천도제를 지내는 것까지는 좋았으나 그것과 한글 반포를 엮다니, 꼭 이런 식으로 표현했어야 했냐?!!라고 진정 소리치고 싶었다. 소헌왕후가 불교를 믿은 것, 맞다. 그것은 팩트다. 실제 궁에 불상을 놓았다고도 하니, 숭유억불이 강했던 조선 초기에 대단히 아슬아슬한 행동을 할 정도로 믿었다.
그렇지만 그것을 신미 스님이 한글 창제에 기여했으니, 소헌왕후의 불교 사랑을 엮고, 그녀가 죽은 후에 지내는 천도제도 화려하게 해서 거기서 반포와 관련한 행동을? 아니 이것은 나가도 너무 나갔잖아? 과하면 부족함만 못하다고 했던가? 오히려 불교에 거부감이 들 정도다.
한글을 유생들이 반대한 것도 맞고, 실제 한글 창제 반포가 쉽지 않았던 것도 맞지만, 세종대왕이 바보도 아니고 이 무슨 해괴망칙한 일? 게다가 소헌왕후를 그리 애달프게 찾으며 울다니. 아아, 그래. 감독의 재량, 그래, 그래. 아니!! 한글 창제만 안 건드렸어도 애교로 넘어갔을 거라고!!!
감독이 정녕 사람들이 왜 이 영화를 두고 비판을 하는지 모르겠다면, 진짜 감독 스스로에게 문제 있다고 본다. 문구 하나만 썼어도 됐잖아? 그걸 안 쓰고 그냥 내보낸 거 보면, 의도한 게 있는 거지. 그게 뭔지 모르겠지만.
여성의 역할을 크게 두고 싶었다느니, 가장 낮은 자가 위대한 한글 창제를 만들었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었다느니, 하는 말로 영화적 상상력을 논하기에는-그 의도가 여권신장이니 계급 타파?니 하는 것이라도-가장 핵심이 되는 사실을 왜곡했기에 그 모든 것들이 좋게 보이지 않는다.
거짓말을 잘 하는 사람은, 진실은 꼭 섞어서 말한다고 한다. 변하지 않는 진실, 사실은 말하되 다른 것들을 바꿔서 말하는 것. 감독은 이것을 못했다. 그 덕에 나는 아주 불쾌한 영화를 보고 말았다.
제목
프리스타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