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시다 슈이치는 일본의 남자 작가다. 혹시 여자 작가라고 착각하는 나 같은 사람도 있을까봐~ ㅋㅋ
이름보다는 이 사람의 소설 감성이 웬만한 여자보다도 더 섬세했다고 느꼈기 때문일 수도 있다.
이 책, 큰 줄거리는 단 하나다. 보험설계사 여자가 굽이굽이 마치 우리 대관령 같은(요새도 그런가?) 고갯길에서 목졸라 죽어 있고, 경찰들이 주변 인물들을 만나면서 범인을 찾는 것. 그럼 형사 시점이겠다고 생각할 수 있지만, 아니다. 여러 시점이 나오지만 형사 시점은 안 나온다.
오히려 보험설계사 여자(요시오)를 죽인 범인의 시점과 그런 범인을 사랑하게 되어 그와 한시적인 도망을 치게 된 (미쓰요)라는 여자의 시점, 요시오의 아버지, 죽기 전의 요시오 시점 등으로 나누어져 내용이 이루어진다. 내용이 매우 복잡할 것 같지만 전혀 아니다. 오히려 여러 시점들로 나누어졌기에 더욱 그 사람의 상황과 그 사람의 감정 등이 깊게 이해된다.
작가인 요시다 슈이치 본인도 자신의 걸작이라고 말했을 정도로 인간의 심리가 잘 드러나 있다. 목졸라 죽은 보험설계사 여자는 죽었다는 이유만으로 무조건적인 동정을 받는 것도 아니며, 죽은 자는 말이 없는 것처럼 요시오의 문란한 사생활(즉석 만남 사이트로 문자를 주고 받으며 남자를 만나 돈 받고 호텔 가는 것)을 딸의 죽음을 통해 알게 된 부모의 복잡한 심정이 기억에 오래 남는다. 죽음으로 용서가 되는 것은 아닌 것도 같다. 자신의 딸이 그럴리가 없다며 부정했던 부모. 특히 아버지의 시점에 더해져 찡했다. 물론 그럼에도(문란한 사생활) 죽을 이유는 되지 않지만...
책을 읽는 내내 죽은 여자 요시오에 대해선 일말의 동정도 느껴지지 않았다. 그도 그럴 것이 그럼에도 누군가에게 죽임을 당하면 안 되지만 애가 너~~~무 못됐다. -_- 돈 많고 잘생긴 남자를 밝히며 만남 사이트로 알게 된 남자들에게선 용돈 벌이를 하고, 결국 그녀를 죽게 만든 유이치에게 죽일 원인을 제공했으니까. 죽일 원인이라는 말이 거슬릴 수도 있다. 음. -_-
유이치가 여자 심리도 잘 모르고 하는 일도 목공일이라는 변변치 않은 사람이지만 요시오는 그런 유이치와 몇 번 자며 돈도 그때마다 받아냈으면서 만나기로 약속한(물론 좋아서는 아니었겠지만) 유이치를 일명 개무시하는 것은 정말 인간에 대한 예의가 없는 뇬~!이라고 할 수 있다. 유이치를 무시하고(물론 유이치는 요시오를 만나기 위해 꽤 긴 시간을 기다렸다) 지 할말만 하고 돈 많고 잘난 대학생 마스오를 우연히 보고는 이게 웬 떡! 하는 심정으로 거의 졸라대다시피하여 그 마시오의 차를 얻어타고 고갯길로 향하고, 벙쪘던 유이치는 그 차를 따라간다. 따라가고 싶어서였는지 집에 가는 방향이었는지 기억이 가물가물...(따라갔던 것 같은데...)
역시 요시오가 유이치를 무시한다면 마시오 역시 요시오를 무시한다. 고갯길에서 유이치를 발로 차서 내리게 하는... 진상 놈! 그때문에 머리를 부딪히고 굴욕을 당한 요시오. 유이치가 그냥 지나갔어야 했는데!! 그 모습을 보고 다가가서 데려다주겠다는 유이치를 요시오는 발악발악 네가 날 폭행하려 했다고 경찰에 신고할 거라는 둥, 생난리를 피며 소리친다. 그것에 순간 광분한 유이치. 요시오를 목졸라 죽인다. 진짜 신고하면 자기 말을 아무도 믿어주지 않을 것 같아서...(마지막에 잡힌 유이치가 경찰에게 한 말이다)
그 후 경찰의 탐문과 역시 같은 사이트에서 만나게 된 미쓰요(그렇다고 미쓰요가 요시오처럼 닳고 닳은 애는 아니다. 오히려 연애를 거의 못해본, 여자라고 할까?)와 유이치는 점점 가까워지고 서로 사랑하게 된다. 결국 유이치가 범인으로 지목되고 유이치는 도망을 친다. 그 과정에서 미쓰요는 유이치의 범행을 알게 되면서도 보내려는 유이치에게 함께 도망치자고 한다. 오래 같이 있지도 못하고 둘은 어느 등대 옆의 창고(? 이 아메바 기억력!) 같은 곳에서 결국 붙잡힌다. 여기서 정점! 유이치는 혹시나 미쓰요가 살인범과 도망친 여자라는 낙인으로 찍힐까봐 경찰들이 에워싼 와중에 일부러 미쓰요의 목을 조르는 퍼포먼스(나는 이렇게 말하고 싶다! 사랑하는 여자를 위해 벌인 쇼!!)를 하고, 미쓰요는 이를 그대로 믿는다. 여기서 진짜 황당하더라~
책의 마지막이 미쓰요가 하는 말이다. "세상에서 하는 말이 맞는 거죠? 그 사람, 악인이었던 거죠?"
바로 이 말 전에 죽은 요시오에게 잘못을 빌어야 할 것 같다면서도 도망쳐서 살던 때가 그립다는 미쓰요가(하루하루 늘 똑같은 인생을 살며 연애도 못해보고 그렇고 그런 인생을 살던 미쓰요에겐 꽤나 큰 사건이었을 테니) 결국은 저런 말을 하며 이야기는 끝난다.
사랑해서 그 사람의 범죄 사실을 알면서도 용서해주고 같이 도망쳐서 지낸(길지 않더라도) 시간이 있는데, 유이치가 자기를 목졸랐다고(그 절묘한 타이밍을 이해도 못하나? 사랑한다면서?) 저런 말을 하다니... 요시오를 보는 내내 욕하고 살인을 해서 쫓기는 유이치를 동정하고 미쓰요의 용기와 사랑에 감동받던 나는 마지막에 완전~ 이 여자 뭐지? 순간 황당함에 멍했었다.
진짜 그렇게 생각해서 저런 말을 했는지, 아니기에 반어적으로 쓴 것인지 지금은 다시 생각해보게 되지만... 결론적으로 정말 누가 '악인'인지 생각하게 된다.
나는 요시오도 요시오지만 자기가 한밤중에 차도 다니지 않는 그런 곳에 여자를 발로 차서 부상까지 입혀 버린 주제에 그걸 친구들에게 술안주로 삼던 마스오도 악인이란 생각이 들었다. 모든 일엔 원인과 결과가, 지금의 현재는 과거의 일에 연결된 것이라는 말도 있듯이 마스오의 행위가 비극적인 일을 만들게 된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에 씁쓸했다. 물론 요시오도 그것에 한몫했고. 또 물론!! 그럼에도 사람을 죽인 유이치가 나쁜놈이 아니라는 것은 아니다.
이유가 어떻든 살인자는 살인자다. 게다가 제3자의 사람들에겐 더욱 그렇다. 미디어를 통해 드러나는 일만 믿는 사람들에게 요시오가 사실은 싸가지 바가지고, 마스오도 마찬가지 인간이고 등등의 그 이면에 있는 사실을 알 수 있을까. 살인자는 살인자로만 남는다. 물론 그렇다고 모든 살인자에게 그럴 만했어~ 라는 원인을 주려는 건 아니다. 이 책에 한해서~! 유이치에게 동정이 생긴다는 거지!!
그런데 '살인자=악인'이라는 공식이 성립하는지는 모르겠다. 그래서 이 책은 참 많은 생각을 하게 한다. 어떻게 보면 정말 단순한 이야기구조에 각 위치에 있는 사람들의 시점으로(경찰이 인터뷰하면서 유이치의 친구, 요시오의 친구 등) 요시오나 유이치를 알게 되는 식의 이야기임에도 그런 이야기를 이렇게 만든 작가가 정말 대단한 것 같다. 역시 작가는 아무나 하나.. ㅋㅋ
자기만 아는 각박한 현대에 더욱 시사점을 안기는 책이다. 내가 이래서 요시다 슈이치를 좋아한다니까~~~
제목
악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