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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8년에 브라질의 작은 출판사에서 출판된 이 책의 초판은 900부였지만, 20여 년이 흘렀을 때는 전세계 3000만 독자가 읽은 베스트셀러가 되었다. 2년이 지난 후는 이 책이 나온지 30년 째인데, 이때는 과연 얼마나 더 읽었을까? 미래의 일이지만 상상만으로도 대단한 책이라 할 수 있다.
우리나라에서는 2001년에 출간되었는데, 그때 전세계 2,000만 명이 읽었다고 하였으니 10년이 훌쩍 지난 때다. 나 역시 아마 한창 연금술사 이야기가 계속 돌던 때에 읽었던 것 같다. 아니면 조금 지난 때였거나.
이 책을 쓴 파울로 코엘료는 2009년에 '가장 많은 언어로 번역된 작가'로 기네스북에 올랐다고 할 정도니, 연금술사라는 책 하나가 대단한 힘을 지녔다고 하겠다. 재미있는 것은, 파울로 코엘료가 쓴 여러 소설들이 영화로 만들어지기도 할 정도로 대중적이나 비평가들에게는 좋은 평을 얻지 못하고 있다는 것.
인기가 많은 베스트셀러라고 무조건 좋은 책이다고 할 수는 없고, 그와 반대로 인기 없는 책이 좋지 못한 책이라고 할 수 없는 것과 같이, 아니 책을 좋은 책과 그렇지 않은 책으로 구분하는 기준조차 사실 모호하다고 할 수 있지만 적어도 비평가들의 마음은 알 것 같다.
이 인기 많은 연금술사, 감히 무엇이라고 비판하면 안 될 듯한 이 책에 대해 나는 호감이 없기 때문이다. 이 책을 통해 처음 알게 된 작가마저 좋은 감정이 들지 않게 되었으니(나는 작가와 책을 동일선상에 두는 경향이 두드러진 것 같다. 어떤 작가의 한 작품이 좋으면 그 작가의 다음 작품들에 무한한 신뢰가 생긴다. 그런데 내가 우연히 처음 알게 된 작가의 그 작품이-하필이면 별로였을지도 모를- 영 아니었으면 아무리 좋은 평을 듣는 작가라고 하더라도 작가와 다른 작품에 대해 불신이 생긴다. 편협한 독서라 할 수 있지만 잘 고쳐지지 않는다) 그 작가의 다른 작품들은 당연히 내 독서목록에서 제외되는 것.
연금술사는 양을 치는 양치기 소년이 꿈을 찾아서 여행을 하는 이야기가 중심으로, 그 소년이 그 여행을 통해 겪는 여러 경험들이 하나하나의 다른 이야기가 된다. 도둑, 늙은 왕, 집시여인, 파티마 등을 만나고 마지막에 연금술사를 만난다. 그 과정들이 모두 감동을 주고 교훈을 주고자 한다.
벌써 10년도 더 전에 읽은 책이기에 상세한 내용은 기억하지 못하지만, 단 하나 기억하는 것은 이 책의 마지막 페이지를 덮은 후, 다시는 읽고 싶지 않다고 생각한 것이었다. 내가 느낀 감정은 그랬다. 이 소년의 여러 여정은 결국 신에게로, 운명이라는 것이었다는 것. 정해져 있는 운명이 이끄는 대로 여러 위험도 겪고 사랑도 하고, 사람을 만나면서 소년이 찾은 꿈은 운명론적인 것으로의 귀결. 그 외의 것은 보이지 않았다. 그래서 나는 실망하고 분노했다.
자신의 꿈을 찾는 여러 여정이 결국 내게 주어진 운명적인 여행이라면, 내게 주어진 여러 일이 내가 스스로 만들어가는 것이 아니라 누군가가 만들어놓은 서바이벌 게임 같은 것이라면, 세상을 살아갈 이유는 무엇에 있을까? 그냥 모르고 살았다가 죽을 때가 되어서야 아, 내 삶은 결국 운명이었구나, 라고 느낀다면 나는 죽을 때조차 속상한 마음으로 죽을 것 같다.
운명적이다, 라는 말이 꽤 낭만적인 것 같지만 그것만큼 잔인한 말이 또 있을까? 전세계의, 각 개개인들의 삶이 모두 어떤 운명으로 만들어져 있다면, 그것을 만든 존재는 슈퍼 컴퓨터보다 더 위대할 것이고, 그런 것은 있을 수 없지 않을까? 신을 부정한다거나 비판한다는 것이 아니다. 각자가 자기가 믿는 신을 믿으면 되지만, 신을 믿는다고 운명론적인 삶이라는 것까지 믿어야 할 건 아니라고 여기기에. 나는 그렇다. 참고로 나는 무신론자는 아니다. 많은 애정을 가진 신자도 아니지만. 신을 믿는다고 운명론자가 되어야 할 것은 아니니까. 또한 신을 믿는다고 운명론자가 되어야 할 것도 없고.
이런 이유로 나는 연금술사를 좋지 않게 기억하고 있다. 우리는 좋지 못한 일을 하면 당연히 벌을 받는다고 말한다. 이것은 어쩌면 운명론에 입각한 말이기도 한 것 같다. 그런데 현실은 그렇지 않다. 악인들은 더더욱 잘 살고 잘 살기 위해서는 힘을 가져야 한다고 한다. 돈이든 권력이든 그 어떤 힘. 힘을 가진다는 것 자체가 악인이 된다는 것은 아니지만 대체로 옳지 못한 일을 하는 사람들이 힘을 가지고 있다. 그들은 벌받지 않는다.
이게 현실이다. 이런 현실에 운명론은 내가 이 책을 읽었던 십여 년 전이나 지금이나 너무 가혹한 것 같다. 그래서 난 이 책을 좋아하지 않는다.
어쩌면 현실에 만족하지 못하는 삶을 살고 있기에 운명론적인 관점에 치를 떠는 것일 수도 있다. 이게 내 운명이라면, 이라는 끔찍함.
또한 어쩌면 현실을 벗어나지 못하는 삶을 살고 있기에 이것이 내 운명이려니, 라는 생각으로 그 자체를 위안으로 사는 사람도 있겠지만...
이외에도 이 책은 너무 일차원적이라서 내용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대놓고 드러낸 교훈과 감동. 복잡다단하게 도대체 무슨 소리를 하는지 알 수 없는 내용으로 점철된 책을 좋아하는 것도 아니지만, 너는 이런 감동을 받고 이런 교훈을 받아야 해, 라고 강요하는 듯한 느낌.
책을 읽어나가면서 내용에 스며들며 조용한 울림으로 오는 감동이나 그 안에서 오는 교훈을 좋아한다. 여러 번 곱씹어 보고나서야 아~하는 그 느낌.
파울로 코엘료가 대단한 작가인 것은 맞지만 그가 쓰는 작품들은 나와는 잘 안 맞는 것 같다. 어쩜 나는 너무 삐딱한지도 모르겠다.
제목
파울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