yes24에서 이미지 발췌
이 책을 읽을 때까지 요시다 슈이치라는 작가를 전혀 몰랐었다.
그리고 이 책을 읽으면서 당연히 이 작가는 여자일 것이라 생각했었다.
그 정도로 여자만이 알, 여자이기에 가능한 섬세한 이야기들이 이 책에서 드러나기 때문이었다.
그렇기에 이 '7월 24일 거리'를 쓴 작가가 남자라는 것에 충격을 받았더랬다. 이 책의 페이지는 많지 않다. 그래서 편하게 읽을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하여 읽기 시작했고, 확실히 복잡하다거나 어려운 내용은 아니어서 페이지 넘기기가 수월한 편이었지만 그렇다고 슉슉 넘어가는 것도 아니었다.
내가 워낙 책을 천천히 읽는 편이지만(요새는 빨리 읽으려고 하다보니 다 읽고 난 후 기억에 오래 안 남는... ㅠㅠ), '7월 24일 거리'는 나의 책 읽는 속도를 조금 더 늦추게 만들었다. 별 거 아닌 내용인데, 그 별 거 아닌 내용에서 '나'를 발견하고, '나'에 대해 생각하게 만들었기 때문이었다.
책의 목차도 의미심장하다.
1. 인기 많은 남자가 좋다
2. 남이 싫어하는 여자는 되고 싶지 않다
3. 늘 들어주는 역할이다
4. 의외로 가족 관계는 양호하다
5. 첫 경험은 열아홉 살
6. 타이밍도 좋지 않다
7. 때로 순정 만화를 읽는다
8. 밤의 버스를 좋아한다
9. 아웃 도어는 싫다
10. 실수하고 싶지 않다
주인공, 혼다는 작은 항구도시에 살고 있다. 늘 똑같은 일을 하며 반복적으로 살아가는 그녀에게 재미있는 점은 포르투갈의 리스본과 자신이 사는 마을을 겹쳐셔 생각하는 것. 리스본에 있는 7월 24일 거리를 자신이 사는 마을과 같은 맥락으로 놓고 상상하며 다니는 것이다.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너무나 평범하디 평범한 주인공 혼다. 그녀는 홀로된 아버지와 너무나 잘난 남동생을 돌보며 살아간다. 또한, 고등학생 때부터 홀로 짝사랑했던 학교의 킹카 선배(사토시)를 잊지 못하고 있다. 나서지도 않고, 싫다는 말도 잘 못하는 어떻게 보면 우유부단하고, 상상 속에서만 살아가는 혼다.
그런 그녀에게 일상이 조금씩 어긋나는 일이 생겨난다.
혼다가 좋아했던 킹카 선배와 퀸카 선배는 학교에서 유명한 커플이었으나 킹카 선배가 도쿄로 떠나면서 혼자 남은 퀸카 선배는 그녀의 직장 상사와 결혼한다. 그러나 둘 사이가 그다지 좋지 못한 것. 직장 상사는 그녀를 자기 부인과의 징검다리 역할로 도움을 청하고 혼다는 이를 거절하지 못한다.
그러는 와중에 짝사랑했던 킹카 선배가 몇년 만의 고등학교 동창회에 참석한 것. 어쩌다보니 퀸카 선배와 킹카 선배의 알리바이 역을 하게 되는 혼다. 짝사랑하는 선배를 몇년 만에 만났음에도 멀리서 지켜만 봐야 하는 심정, 직장 상사에게도 미안하고, 마음이 복잡다단하지만 이렇다할 어떤 액션은 하지 못한다.
그렇게 퀸카 선배와 사토시의 알리바이 아닌 알리바이를 만들어주다가 사토시와의 만남이 이어지고 사귀는 사이가 된다. 오랜 기간 짝사랑했던 사토시와 만나게 되지만 혼다는 불안하다. 거기다 직장 상사와 퀸카 선배의 이혼 얘기가 들리고, 아무것도 내세울 것 없이 너무나 평범한 자신의 입장 때문에 더더욱 불안해지는 혼다.
혼다는 아버지가 사귀는 아주머니가 집의 부엌을 마음대로 쓰는 것이 마음에 안 들지만, 아무 말도 하지 않고 너무나 잘난 동생이 너무나 평범한 여자를 만나는 것도 마음에 들지 않는다. 게다가 동생이 사고를 쳐서 그 여자애가 임신까지 하는 일이 발생. 늘 조용, 조용, 자신의 감정을 잘 드러내지 않는 혼다가 화를 내고, 소리를 지른다. 그후 동생 여자 친구를 만난 혼다. 그 여자가 자기와 너무나 비슷하다는 것을 안다. 위의 목차 10가지는 바로 동생 여자 친구가 혼다에게 한 말이다. "인기 없는 여자들이 사랑에 실패하는 이유"인가, 인기 없는 여자들이 연애를 못하는 이유인가? 아무튼 그와 비슷한 내용으로 한 말이다.
혼다는 동생 여자 친구과의 만남을 통해 자신의 껍질을 깬다. 그녀가 자신과 매우 같지만, 그럼에도 그 껍질을 깨고 동생과 만났다는 것을 알게 된다. 동생 여자 친구 역시 너무 잘난 동생에 비해 자신의 평범함을 얼마나 불안해했을까?
우연히 세 번이나 만난 경비원이자 화가가 그녀에게 관심을 표하지만 그녀는 위의 목차 10번처럼 살아왔던 자신의 틀에서 벗어나 실수하더라도 앞으로 나아가고자 한다. 바로 사토시가 있는 도쿄로 가는 기차에 몸을 싣는 것.
오랜 기간 짝사랑했던 사토시와의 끝을 맺든 새로운 마음으로 시작하든, 그녀는 실수일지도 모를 그 만남을 위해 출발한 것이다.
특별하지 않은, 색깔 없는 듯한 너무나 평범한 그녀는 사토시와의 만남 이후 어떤 색깔을 가지게 될까? 길지 않은 페이지에 복잡하지 않은 내용, 연애소설이라기엔 부족한, 성장소설이라기엔 또 몇 퍼센트 부족한, 어떻게 보면 밋밋하다고 할 수 있는 소설이지만 여자의 섬세한 감정 표현을 너무나 잘 그리고(이거 나 같아,라는 생각이 들만큼), 어느 순간 주인공을 응원하는 마음으로, 책 마지막의 여운을 느끼며 책을 덮는 나를 발견한다.
사실 처음 읽었을 때는 그 끝이 너무나 마음에 들지 않았다. 혼다의 사랑이 어떤 식으로든 확고한 색으로 드러나길 바랐다. 끝이든 아니든. 마치 독자가 알아서 생각하라고 하는 듯한 느낌? 열린 결말을 싫어하기에 더욱 그랬던 것 같다.
그런데 지금 다시 그 책의 내용을 찬찬히 생각해보니 그렇게 끝을 내는 게 오히려 독자로서는 여운이 더 길게 남았던 듯싶다. 혼다에게 어떤 결론이 나든 그녀를 응원하는 마음은(마치 나 자신을 응원하는 것 같은) 변함이 없으니까.
그렇지만 내 작은 바람은 혼다가 사토시와의 사랑을 이루어내길... 보잘 것 없고, 평범하기에 잘난 사람하고의 사랑은 이루어질 수 없다는 편견과 같은 것을 깨길...
간절히 바라본다.
그리고 언젠가 포르투갈의 리스본을 꼭 가기를...
제목
사랑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