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0년도에 나온 책. 내가 가지고 있는 것은 이것이다
1987년에 일본에서 출간된 노르웨의 숲은 현재까지 36개국 이상에서 번역 출간되어, 이 책의 저자 무라카미 하루키를 세계적인 작가로 올려놓았다.
그리고 노벨 문학상 수상 후보자로 늘 이름을 올리는 작가이기도 하다. 1987년에 나왔지만 나는 대학을 간 후에야 접했다. 내가 산 책의 제목은 "상실의 시대"였다. 우리나라에서 처음, 상실의 시대란 이름으로 출간이 되었는지 중간에 바뀌었는지 그건 잘 모르겠다.
그리고 내가 산 이후에 노르웨의 숲이란 이름으로 다시 발간되었던 것도 같고... 아무튼 읽고 난 후 너무 좋았는데, 알고 보니 원래 제목은 상실의 시대가 아니라 노르웨이 숲이란 사실을 알고 놀랐다.
그래서 이번에 무라카미 하루키가 노르웨의 숲 출간 30주년을 맞아 직접 표지 디자인 색깔까지 골랐다는 재발간 리미티드 에디션 노르웨이의 숲이 너무나 사고 싶다. ㅠㅠ
같은 책을 또 갖고 있는 것을 경제적으로나 공간적으로나(자리를 차지하는;;) 좋아하지 않는데, 이 책을 원래의 제목으로 갖고 싶은 욕심과 30주년으로 나온 판을 사고 싶은 욕심이 힘을 합쳐 나의 의지를 무너뜨리고 있는 중이다. ㅋㅋㅋㅋ 작년에 나왔는데, 아직도 고민만 하고 있다뉘~
노르웨의 숲이란 제목은 주인공인 와타나베가 독일 함부르크 공항에 막 도착한 비행기 안에서 울린 비틀스의 "노르웨의 숲"이란 노래를 듣고 과거로 회상하는 씬에서 내용이 시작하는데, 그것에 맞춰 무라카미 하루키가 잡은 건 아닌가 싶다. 나는 노르웨의 숲이란 비틀스 노래를 듣지 못했지만, 왠지 이 책과 너무나 어울리는 제목이란 생각이 들었다.
상실의 시대도 그 나름대로 괜찮았지만 너무 직접적인 느낌의 제목이기는 했다.
늘 생각하는 게 좋은 책, 고전이라 불리는 좋은 책은(이 책이 벌써 고전이라 불리는 건 아니다. 왠지 고전이라고 하면 50년에서 100년 이상은 되어야 할 것 같은 느낌이라~) 언제 읽어도, 시대가 전혀 다른 상황이라고 해도, 이질감이 느껴지지 않고 거부감 없이 감동을 느끼며 읽고 난 후에 여운이 길게 남는다는 점이다.
이 책 역시 그렇다. 일본 작가이다 보니 책이 나온 당시, 1987년의 일본 젊은이들의 모습이 그려지지만, 내가 20대 초반에 처음 읽었을 때도(나온지 십여 년이 훌쩍 지난 이후) 이 책이 그렇게 예전에 쓴 책이라는 것을 인지하지 못했었다. 그만큼 세월의 거리감이 느껴지지 않았다. 그리고 또 그와 비슷한, 그 보다 더 오래 지난 지금 이 나이에 읽으면 어떤 느낌일까? 20대에 처음 읽었을 때와는 또 다른 감정을 느끼겠지만, 역시 이질감이나 세월의 거리감은 느끼지 못하지 않을까 싶다. 이걸 보편성이니 불변성이라는 말로 표현하기도 하는데, 나는 여기에 우리가 인간이라는 존재이기 때문에라고도 이유를 붙이고 싶다. 그리고 역사는 늘 반복되는 법이기도 하고. 인간의 감정들, 그 많은 고민과 실수들도 늘 반복되는 것이기도 하니까.
주인공 와타나베는 37살이다. 그는 공항에서 들은 노르웨의 숲 때문에 자신의 십대와 이십대의 중요 인물이었던 나오코를 생각하게 된다. 자신을 잊지 말라던, 나오코를 그는 나이가 들고 살아가는데 정신을 쏟으며 잊고 살다가 그 노래 하나로 기억하게 된 것이다.
고등학교 때 가장 친했던 친구 기즈키와, 그의 여자친구 나오코는 와나타베와 늘 함께했다. 그렇게 셋이 그 나이에 맞는 즐거움을 만끽하며 지낼 때, 그 나이와는 전혀 맞지 않을 것 같은 선택을 기즈키가 하고 만다. 자살이라는 갑작스러운 친구의 선택에 와타나베와 나오코는 충격을 받고, 그렇게 그들의 인연은 끝난다.
그럼에도 시간은 흐르고 와타나베는 고향을 떠나 도쿄의 대학으로 진학한다. 그러다 우연히 전철에서 만난 나오코(고등학생 때와 분위기가 완전히 바뀐 모습)와 와타나베. 둘은 둘만이 가질 수 있는 슬픈 기억과 즐거운 추억 등을 공유하며 특별한 사이가 된다. 특별하지만 연인이라고 하기도 애매하고 그렇다고 그냥 친구라고 하기에도 무엇인가 애매한 그런 사이가 이어지다가 스무살이 되어(일본은 외국처럼 우리보다 2년 빨리 학교에 들어간다. 다른 얘기지만 우리나라 나이 세는 개념은 바꿔야 한다고 생각한다!! ㅡ,.ㅡ) 와타나베와 나오코는 처음 함께 잔다.
그 후 나오코는 와타나베의 시간 속에서 사라진다. 와타나베는 갑자기 없어진 나오코 때문에 방황하고, 그러던 중에 나오코와는 전혀 다른 활발하고 발랄한 미도리라는 후배(인지 친구인지 기억이... -_-)를 만나 그녀에게 매력을 느낀다.
어느 날, 나오코로부터 편지가 온다. 요양원에 있다는 편지. 와타나베는 나오코를 찾아가고, 비로소 자신이 나오코에게 가졌던 그 애매모호한 감정이 사랑이었다는 것을 깨닫는다. 그러나 나오코는 와타나베를 사랑하지 않는다. 와타나베는 그것을 알면서도 정기적으로 나오코를 찾아가고, 그러는 한편 미도리와 지낸다.(사귀는 거였는지 애매모호한 사이였는지 기억이... 아, 빨리 사서 다시 읽어야겠다)
나오코가 요양원에 들어간 이유는 기즈키의 죽음을 극복하지 못한 마음의 상처 때문이다. 와타나베는 그런 그녀를 사랑하며 미도리라는 여자를 또 만나며 그렇게 스무살을 보낸다.
ㅋㅋㅋ 2권 아니다. 오른쪽의 기름 종이(라고 하겠다!)를 빼면 왼쪽의 색감이 드러난다
아직도 이 책에서 가장 아련하게 기억나는 것은 달빛을 받은 나오코의 모습이 묘사되는 장면이다. 당시 읽었던 그 어떤 책에서도 느끼지 못했던 아련함과 아름다움을 느꼈다. 책을 읽을 때 이미지화해서 읽는 편이어서 그럴지도~ 그때 내가 그 장면을 보며 상상한 모습은 실제로 볼 수 없는 장면이었기에 더 기억 속에 각인이 되어 있는지도 모르겠다.
그 장면이 나온 앞뒤의 내용은 어렴풋이 기억날 뿐이다. 와타나베가 나오코를 바라보는 시선이었는데, 그게 외설적인 바라봄이 아니라, 와타나베 역시 뭔가 아련한 모습을 나오코를 통해 보고 있었다. 내용에 반영한 상상만 하는지라~ ㅋㅋㅋㅋㅋㅋㅋ
아마, 나오코 역시 자신의 생을 기즈키와 같은 방향으로 끝낸 것으로 기억하는데, 맞는지 모르겠다. 아니면 요양원에서 나간 후 와타나베와 연락이 끊긴 것인지, 병으로 죽은 것인지... 나오코의 마지막이 기억이 안 난다. ㅠㅠ
이십 대 초반에 와타나베의 시선에서(책도 와타나베의 시선으로 전개된다) 그의 아픔에 아파하고 방황에 슬퍼하고 그의 사랑을 응원했었다. 그리고 읽고 난 후, 한동안 왠지 모를 상실감을 느꼈다. 나는 와타나베와 같은 경험이 없었음에도 말이다. 누군가, 또는 무엇인가를 함께 공유했다 잃었던 사람들의 친밀감, 특별함 같은 것이 서로의 관계에 양날의 칼이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나오코는 와타나베를 통해서 계속 죽은 전 남자친구만을 그렸고, 와타나베는 그것에 상처를 받고. 서로 만나지 않았어야 했다고 생각하지만 책에서는 그 관계에서도 와타나베는 성장했다는 식으로 나온다. 사람 관계에 정답은 없는 것이고, 악연이니 인연이니 하는 것도 생각하기 나름이고, 후에 시간이 지나고 보면 인연이 악연이, 악연이 인연일수도 있는 법이기도 하고.
그렇지만 나오코와 와타나베 사이의 그 특별한 감정은 나오코에게 과연 어땠을까 싶은 생각에 마음이 무겁다. 그런 관계 속에서 상처가 아물었으면 좋았을 텐데, 왜 나오코는 그 아픔과 상실에서 헤어나오지 못하고 그 지난 시간 속에서만 빙빙 돌았을까. 어른들은 말한다. 그 어린 나이(16~17살)에 사랑을 알기는 하냐고. 나오코를 보면 그렇지도 않은 것 같다. 어른이 되어서도 사랑을 아는 것은 아니니까.
머, 암튼 나오코가 가장 아쉽고 그렇게 그릴 수밖에 없었나 하는 안타까움이 든다. 하긴 와타나베를 통해 감정을 치유하고 둘이 행복하게 잘 살았다,라는 내용이라면 무라카미 하루키가 아니지만~ ㅋㅋㅋㅋ
무라카미 하루키의 소설 스타일을 싫어하는 사람도 있다. 무엇인가 확실하지 않고, 현실적이지 않은 것도 같고(몽환적이면서 환상적인), 또 왠지 모르게 허무하고 그런 스타일이 쉽게 읽히지 않는다고 말이다.
스쳐지나간 무수한 날들 중, 나는 어떤 날이 불현듯 떠오를까? 내가 잃어버린 것은 단지 시간일까, 사람일까, 기억일까. 예전에 읽었던 것만으로도 이런저런 생각이 떠오르는 것을 보니, 오랜만에 읽으면 어떤 감정이 들까?
지금 내 나이에 읽으면 또 어떤 감정을 가질까, 궁금하고 설렌다.
내 이십 대가 그리워서 허무하게 지나간 듯한 그 나날이 그리워서 잠 못 들지는 않을까?
사설이지만 노르웨이를 가고 싶다. -_-
제목
노르웨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