넬레 노이하우스의 타우누스 시리즈는 작은 마을 타우누스의 강력반 형사반장 보덴슈타인과 같은 팀 형사 후배 피아가 한 팀이 되어 살인사건을 해결해가는 구성으로 되어 있다.
나는 셜록홈즈 시리즈, 애거서 크리스티 전집, 앨러리 퀸 같은 스타일의 추리물을 좋아하지만 넬레 노이하우스나 마이클 코넬리, 요 뵈스네와 같은 요즘 시대(?) 작가의 추리물들도 좋아한다. 어떻게 보면 같고, 또 어떻게 보면 많이 다르지만.
굳이 선택하라면 전자쪽이 더 마음이 간다. 우선 그 첫 번째 이유는 분량이 적당하기 때문이다. 넬레 노이하우스 책들도 분량이 어마어마한데, 요 뵈스네도 마찬가지. 추리 소설을 쓰는 현대 작가들은 분량으로 압도한다. 그것이 재미 없으면 당연히 큰 부담이지만 다행스럽게도 재미있기에 그 어마어마한 분량도 밤을 새워가며 읽는다. ㅋㅋㅋ
두 번째 이유는 그 당시의 시대와 문화를 책 안에서 고스란히 느낄 수 있기 때문이다. 내가 살지 못했던 1800년대 중반에서 말부터 1900년대 초에서 1차 세계 대전 전이나 후까지의 시대 배경을 느낄 수 있어서(엘러리 퀸은 그보다 훨씬 후인 시대의 작가지만, 엘러리 퀸이 보여주는 시대 역시 내가 살고 있는 지금은 아니기에~), 비록 간접적이나마 "아, 그때는 그랬군"이라고 알 수 있다고 할까?
나는 이들 작가 외에는 크게 마음둔 추리 소설 작가가 없었는데, 넬레 노이하우스의 작품을 읽은 후로(그녀에게는 네 번째 작품인 "백설공주를 위하여"가 우리나라에 가장 먼저 번역 출간되었다. 엄청난 인기를 끌어서 우리나라에도 소개된 케이스), 팬이 되었던 것.
우리나라에서도 팬이 확보되어 고맙게도 넬레 노이하우스의 첫 번째 작품부터 쭈욱 번역 출간되었다. 그런데 네 번째 이후 다섯 번째가 먼저 출간되어 첫 번째, 두 번째, 세 번째를 후에 보게 되었다. 추리 소설이지만 그것을 해결해가는 형사들의 주변 이야기들도 나오기 때문에, 특히 가장 최근에 읽은 "깊은 상처"를 읽는 내내 괴리감이 느껴져 아주 집중이 안 되어 혼났다.
왜냐하면 보덴슈타인의 주변 배경이 4권에서 5권 넘어가서는 완전히 바뀌었기 때문이다. 차라리 1권부터 착실히 읽었다면 덜할 텐데... 좀 짜증이 났다. 특히 3권 읽으면서 "하아 이랬는데, 이랬는데!! 도대체 왜 그랬을까?"라는 생각이 계속 든 것. 그들의 현재 일을 미리 알고, 과거 일을 보는 것과 마찬가지여서... 내가 너무 그 캐릭터에 몰입했나? ㅋㅋㅋ
살인 사건을 해결하는 과정보다 그런 부차적인 배경에 더 신경이 쓰여서 말이다.
"깊은 상처"의 내용은 독일의 아픈 과거인 히틀러 때의 유대인 학살과 관련한 이야기가 주된 내용이다. 결국 해결되지 않은 과거, 추악한 과거는 미래인 현재까지 이어져 벌을 받는다고 할까? 80대의 저명한 전직 정치가이자 유대인이 살해되는 사건이 벌어지면서 이야기가 진행된다. 알고 보니 완전 나쁜 놈이 착한 놈인 척한, 경악할 만한 내용이 펼쳐진다. 이야기 소재로는 엄청나게 매력적인 것. 그럼에도 유독 "깊은 상처"가 집중이 되지 않았다.
히틀러가 독일을 통치하던 그 시대의 아픔이 고스란히 드러나면서도 그것에만 포커스가 맞춰지지는 않는다. 그때 히틀러 정말 나쁜 놈이었어!!라는 식으로 이야기가 흘러가지 않는다는 말이다. 추악한 인간의 더러운 면을 본 것 같아 씁쓸했고, 악인들이 60년이 넘는 긴 시간을 거짓으로 살았다는 것에 의구심이 남았다. 읽는 내내 내용의 구조적인, 추리소설의 기본인 논리적인 부분이(셜록홈즈 시리즈도 논리적이라고 할 순 없지만...) 결핍되는 느낌이 많이 들었다.
거기에 진행은 더딘 것만 같고, 주변부 얘기는 왜 이렇게 많이 나오며, 왜 그들에게 그런 결말을 주었는가,에만 자꾸 머릿속이 맴맴 돌아서... 어떻게 보면 내가 책을 제대로 안 읽은 것이다.
아직 안 읽은 넬레 노이하우스의 여섯 번째와 일곱 번째 책이 책장에서 내가 읽어주기만을 바라고 있는 상황인데, 큰일이다. ㅜㅜ
솔직히 말하면 "깊은 상처"는 읽는 내내 지루했고, 페이지는 왜 이렇게 많나, 하면서 계속 책장을 들추었으며 관계를 꼭 이렇게 꼬이게 만들어야 했나, 짜증도 좀 났다.
특히 나와 반대되는 가치관이 드러나는 것이, 그들은 그렇게 행복했습니다와 같은 결말이 너무나 불만스럽기도 했고. 이래저래 실망한 작품인데, 아이러니한 것은 내가 넬레 노이하우스의 첫 작품부터 읽었다면 아마 가장 많이 팔리고, 가장 유명한 네 번째 책인 "백설공주를 위하여"는 안 읽었을지도 모른다는 것.
작가의 모든 작품이 좋을 수는 없지만, 지금의 이 실망감이 그대로 영향을 미쳐서 넬레 노이하우스의 책은 읽지 않았을 것이다. 다행스럽게도 이 "깊은 상처"가 뒤늦게 번역이 되어, 내가 넬레 노이하우스의 책 중 가장 괜찮다고 생각하는 "백설공주를 위하여"를 볼 수 있었으니...
어쩌면 넬레 노이하우스의 책 중 가장 처음 읽어서 좋았던 것일 수도 있겠다. 많은 분량에 계속 같은 스타일로 반복되는 패턴에 질린 것일 수도 있다. 주변부 얘기 말고 좀 빠르게 사건이 해결되면 정말 좋겠다. 분량 좀 줄여서!!!
"깊은 상처"는 넬레 노이하우스를 좋아하는 독자라면 읽어볼만 하다. 나는 비록 실망했지만, 그건 좀 다른 문제인 듯. ㅋㅋㅋㅋㅋㅋ 독일의 아픈 과거를 역사 수업처럼 지루하게 나열하지도 않고, 살인사건의 가장 큰 배경이지만 읽는 독자들이 그 시대의 만행을 나름으로 느낄 수 있도록 썼다. 더군다나 나쁜 놈들이 긴 시간이 흐르긴 했지만, 죄값을 치렀으니 만족한다. 과거의 아픔이 현재까지 이어진다는 것에는 공감했다. 우리도 같으니까.
제목
상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