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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디어아티스트 막스 하틀러, 더 '넓은' 애니메이션을 말하다
등록날짜 [ 2015년09월30일 14시55분 ]


'애니메이션'이라는 단어를 듣고 떠오르는 이미지는 무엇인가? 다채로운 캐릭터와 생동감 있는 움직임, 실사 영화 못지 않은 깊이와 서사 전달력을 갖춘 작품들, 디즈니와 지브리스튜디오 등 전세계를 감동시키는 작품을 보여주는 제작사 등일 것이다.

그러나 애니메이션이 포괄하는 범위는 무척 넓어서 겨울왕국, 센과치히로의 행방불명, 드래곤 길들이기, 토이스토리 등 처럼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작품들은 그저 일부에 불과하다. 캐릭터도 없고 서사도 없고 심지어 특정한 형태가 없는 비구상(nonobjective) 애니메이션을 본다면 움직이는 이미지와 색상에서 상징성이나 특정한 의미를 찾기 위해 노력해야 할지도 모른다. 시각 정보만으로 의미를 쉽게 찾지 못할 때 사람들은 해당 작품을 '어렵다'라고 판단하거나 대중 예술이 아닌 '고급 예술'의 범주로 밀어내버린다.



 

이처럼 '고급 예술' 범주에서 익숙한 방식의 매체를 활용했지만 그 내용은 익숙하지 못한 성격의 미술 작품을 지칭하는 단어도 따로 있는데, 현대의 대중매체을 활용했다 하여 이를 '미디어아트'라고 부른다. 서사성도 마스코트 캐릭터도 없는 애니메이션을 과연 대중들은 '애니메이션'으로 취급할까 아니면 '미디어아트'로 취급할까?

이러한 미디어아트에서 괄목할 만한 성과를 보여주고 있는 이가 막스 하틀러이다. 미디어아티스트' 막스 하틀러(Max Hattler)는 추상 애니메이션 작품으로 다양한 공연이나 영화제, 비주얼 퍼포먼스를 통해 대중에게 자신의 작품 세계를 보여준다. 그는 스스로의 작품을 '애니메이션' 작업으로 여기며, 관객 혹은 같은 애니메이터들에게 '애니메이션'이라는 장르를 협소하게 정의 내리지 말라고 이야기한다.
 

지난 9월 17일부터 22일까지 진행된 국내 유일의 독립애니메이션 영화제인 '인디애니페스트'에도 대중에게는 제법 익숙하지 않은 다양한 애니메이션들이 모였다. 인디애니페스트는 자신만의 애니메이션을 제작하는 작가들이 대중에게 작품을 선보이고 서로의 이야기를 공유하는 자리이기도 했다.
 

게임포커스는 제 11회 인디애니페스트의 심사위원으로서, 애니메이션의 또 다른 방향을 제시해 준 막스 하틀러 감독과 만나 그의 작품에 대한 이야기를 들었다.



 

'미디어아티스트', '애니메이션 제작자', '오디오 비주얼 아티스트' 등 당신을 지칭하는 수식어가 다양하다. 우선 자신과 작품에 대한 간단한 소개를 들려달라
독일에서 태어나 런던에서 미술, 애니메이션을 공부했으며 순수미술(Fine Art) 석사 과정을 마쳤다.현재 홍콩 대학에서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다.
 

보통 추상 애니메이션 작업을 많이 하고 음악과 영상을 함께 보여주는 오디오 비주얼 작품을 만든다. 무한히 루프하는 단편 영상, 설치 미술, 여러 화면에 영상을 보여주는 형식의 작품을 선보일 때도 있으며, 분수 같은 특별한 환경에서 라이브 퍼포먼스를 펼친 적도 있다.
 

주로 상업적인 쪽보다는 미디어아트 영화제에서 작품을 상영하고 있다. 또 가끔 밴드나 음악가와 함께 라이브 공연, 콘서트, 협업 작품을 보여주기도 한다. 지난 봄에는 한국의 서울시립미술관(SeMA)에서 '오디오 비주얼 스펙타큘러(Audio Visual Spectacular)라는 공연을 선보인 적이 있다.
 


작품을 무척 즉흥적으로 기획하고 작업에 착수한다고 들었다. 평균 작업 기간은 어느 정도인가
작품에 따라 굉장히 다르다. 어떤 작품은 주말 이틀 동안 만들 때도 있고, 사운드나 마무리 단계에서 지연되기도 한다. 어떤 작품은 기획하는 과정에서 몇 년이 걸릴 때도 있는데 예산 마련에 시간이 걸릴 때도 있다.

작품을 구상하는 것부터 완성까지의 과정은 어떤지 궁금하다. 특히 팀과 함께 일할 때의 환경에서는 어떠한 의사소통이 이루어지는가
작업을 시작할 때부터 명확한 아이디어를 갖고 시작하지 않는다. 나는 스토리 보드를 작성하는 것을 싫어하는 편이다. 단순한 아이디어 몇 가지로 출발해 작업을 진행하다 보면 그 아이디어들이 점점 가지를 뻗게 된다. 이 때 처음 출발했던 아이디어를 되새기며 엇나가지 않도록 방향을 정한다. 이 아이디어는 시각적인 이미지가 될 수도 있고 좋아하는 음악이 될 수도 있는데 작업 과정 그 자체가 일종의 실험이기도 하다. 이 과정에서 나름의 규칙이 발생하게 되는데 이 때의 규칙은 꼭 지키려고 한다. 이 규칙들을 작품의 주제로 삼아 앞으로 나아가게 되면 방향성이 명확해 진다.
 

이처럼 작업하다보니 함께 협업하는 이들이 처음부터 명확한 방향성이나 지도를 받기 원한다면 작업하기가 무척 어려워진다. 하지만 나의 작업 과정을 잘 이해하고 그대로 받아들여준다면 훨씬 수월해진다. 또 같이 작업하는 사람에게 제법 자유롭게 맡기는 편이다. 물론 작품 방향에 맞아야 하기 때문에 최종 결정은 내가 하지만, 그 사람이 만든 부분을 포함시킬 건지 뺄 건지 정도를 결정한다. 이런 작업 방식이 맞는 사람들과 작업하게 된다면 과정이 길어져도 무척 즐겁다.

작품을 보면 디지털 사운드나 이미지, 아날로그 사운드나 소재를 다양하게 사용하는데 작업할 때 이를 구분하여 다루나
디지털과 아날로그를 크게 구분하지 않는다. 이들은 결국 작품을 만드는 데 사용되는 도구일 뿐이다. 워낙 새로운 것을 시도하기를 무척 좋아하기 때문에 몇 년간 아날로그 소재로 작업하다가 나중에는 디지털 작업만을 하는 식으로 작업방식을 바꿔가는 걸 좋아한다.
 

지금보다 더 옛날에 애니메이션을 제작했다면 무척 돈과 시간이 많이 들었겠지만 다행히도 디지털의 수혜를 많이 받고 있다. 어떤 소재를 사용하든 마지막에는 컴퓨터 앞에 앉아서 영상을 편집하거나 프레임 하나하나를 보면서 작업을 완성시켜야 한다. 다양한 도구들의 도움을 많이 받고 있지만 도구가 그리 중요한 것은 아니다.
 


그렇다면 특별히 재밌었던 작업 방식으로는 무엇을 꼽을 수 있을까
애니메이션을 만드는 그 자체가 시간과 노력이 많이 필요하다. 모든 작업들이 한편으로는 재미있고 한편으로는 고통스럽다. 그 중에서도 스톱 모션 애니메이션에는 그 만의 독특한 매력이 있어서 무척 좋아한다. 카메라 밑에서 오브제를 손으로 움직여가며 촬영에 집중하게 되면 일종의 명상에 잠기는 듯한 기분이 들기도 한다. 또 작업을 끝내고 그 결과물을 봤을 때 정말 뿌듯하다. 스톱모션 애니메이션은 한 번 촬영하고 나면 모든 작업이 끝난다. 디지털 프로그램을 사용하는 작업들은 여러 차례 수정을 거칠 수도 있지만 스톱 모션 애니메이션은 당시의 그 촬영으로 완결되기 때문이다.
 

또 라이브 공연에서 하는 퍼포먼스 작업도 무척 재밌다. 스톱 모션 애니메이션의 재미와는 또 다르다. 공연장은 에너지가 넘치고 붕 떠 있고 대체로 신난다. 실시간으로 작업해야 하므로 매 순간 집중해야 한다. 또 반응을 바로 볼 수 있기 때문에 더욱 흥미롭다. 물론 좋은 반응이 올 때는 나도 즐길 수 있지만 이를 위해 고려해야 하는 부분들이나 조건들이 무수히 많기 때문에 실수하게 되면 상당히 곤란해진다. 즉석에서 하는 작업은 그만큼 재미와 고통을 수반한다.
 

지난 18일 영화제에서 약 한 시간 동안 당신의 작품 15편이 연달아 상영되었다. 그 중에는 설치 미술, 퍼포먼스 영상, 루프 영상의 일부 등 다양한 방식의 영상물이 있었는데 이를 모두 한꺼번에 동일한 상영관에서 관객들에게 보여줬다. 다양한 방식으로 선보이는 작품들인 만큼 각각의 의도도 분명할 텐데, 상영 방식이 일관적일 수 밖에 없던 당일과 같은 상황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는가
처음에 작품을 사람들에게 보여줄 때에는 영화제에 주로 출품해왔다. 지금도 영화제에 적합한 영상 작품을 만들려고 노력하고 있는데, 어떤 환경이든 저마다의 장점이 존재한다.
 

전시장에서는 공간, 프로젝션의 크기에 따른 다양한 고려와 시도가 가능한 반면에 영화제에 비해서는 상영 기회가 드물거나 원하는 조건들을 갖춰서 전시하는 기회를 갖기가 드물다. 현재 온라인 상으로도 몇몇 작품을 공개하고 있는데, 이는 더 많은 사람에게 내 작품을 공개할 수 있기 때문이지만 내가 의도한 환경에서 작품을 보여주지는 못한다.
 

18일에 보여줬던 상영 방식도 좋다고 생각한다. 극장 상영의 장점은 관객들에게 처음부터 끝까지 내 작품을 보게 할 수 있다는 점이다. 개방된 전시장에서 전시할 때에는 주로 루프 재생을 하기 때문에 보는 사람만 보거나 작품의 처음과 끝이 아닌 부분만 보게 되는 경우가 많다.
 

온라인에도 영상 작품을 다수 공개하고 있는 것을 알고 놀랐다
내 작품은 순수 미술(Fine Art) 환경에서 전시되는 비슷한 작업을 하는 작가들의 작품에 비해서는 접근성이 매우 높다. 누군가는 너무 많은 곳에 퍼뜨려져 있다고 한다. 몇몇 작가들은 한정된 공간에서 한정된 조건에 보여주면서 작품의 희귀성을 높이는 전략을 세우기도 한다. 수집가의 입장에서 본다면 희귀성이 높은 곳에 투자하기 마련이다.
 

솔직히 내 작품은 잘 팔리는 편은 아니지만 보다 많은 사람들에게 작품을 보여주고 싶어서 다양한 곳에서 선보이려고 노력하고 있다. 다행히 아직까지 작품 활동을 지속하는 데는 지장이 없다.
 


 

내러티브(서사성) 없는 애니메이션은 어디에도 서기 힘들다. 구체적인 형상이 없는 시각 정보를 어렵다고 생각하는 관객들이 대부분인 현실에서 이런 작품 활동을 계속하는 나름의 의의를 듣고 싶다
대학을 졸업하고 석사 과정을 준비하는 사이, 회사에 들어가 영상 편집 등의 기술적인 일을 맡아 했던 적이 있다. 당시에는 상업적인 작업과 개인적인 작업을 병행하고 싶은 욕심이 있었다. 그런데 그 단순한 작업들이 너무 심심했다. 이런 작업을 하다 보면 내 미래도 뻔히 보여 완전히 흥미가 떨어졌다. 개인적으로 욕심이 적어서 이런 생활을 유지하는 게 편하기도 하다. 가난하더라도 현재처럼. 돈이 필요해서 중간에 아르바이트를 뛰는 한이 있더라도 내 작품 활동을 계속 하고 싶다.
 

작품 활동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여러 곳에서 예산을 마련하는 편이다. 예를 들면 작은 규모의 커미션을 찾거나 레지던시 프로그램을 찾는다. 라이브 공연을 하면서 수익을 얻기도 한다. 여러가지 기회들이 합쳐져서 꾸준히 작업을 지속할 수 있는 것 자체가 행운이고 또 기회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무척 기쁘다.
 

지금은 교수 일을 하고 있어서 안정적일지 모르겠지만 이 일이 얼마나 오랫동안 지속될 지는 장담 할 수 없다. 이 같은 작업을 계속 하면서 배운 것은, 반드시 상업 애니메이션을 해야 할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그런 애니메이션을 작업하는 사람이 있는 한편 나처럼 아닌 사람도 존재할 수 있다는 뜻이다.



'Collision'은 막스 하틀러 감독의 애니메이션 작품 중 가장 의미가 뚜렷한 작품 중 하나다


마지막으로 동시대를 살고 있는 독립 미디어아티스트, 애니메이터 등 자신의 작업을 지속하는 작가들에게 한마디 부탁드린다
애니메이션을 만드는 길에 들어섰다면 이미 돈을 많이 벌 수 있는 길에서 벗어났다고 생각한다. 뭔가 하고 싶은 일이 있거나 재능이 있기에 이 길을 선택했을 것이다. 자신의 재능을 믿고 내면에 있는 것들을 적극적으로 표현해줬으면 좋겠다. '어떻게 해야 취직이 잘 된다'라는 얘기에 귀 기울이지 말고 말이다. 이 시대에 태어난 독립된 존재로서, 자신이 표현하고 싶은 것에 집중할 수 있길 바란다.
 

학생들에게 애니메이션을 시작하게 된 계기를 물으면 대부분 디즈니, 픽사, 혹은 '아니메'로 불리는 일본의 전형적인 애니메이션에 대해서 이야기한다. 부디 애니메이션을 이것만으로 국한시키지 않길 바란다. 이게 전부라고 생각하는 것 자체가 큰 착각이다. 애니메이션의 세계에는 더 많은 가능성들이 있다. 뿐만 아니라 살아 움직이는 이미지, 시간, 애니메이션을 만들기 위해 투자하는 수많은 과정 속에 모든 가능성이 있다는 것을 알았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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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문재희 기자(gmoss@gamefocu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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